팔공산 갓바위에서의 108배
.... 아직 애들한테는 이야기하지 말자. 하루라도 더 행복하게...
IMF외환위기 여파로 모든 설계비와 감리비가 전부 나오지 않고 연체되고, 설상가상으로 집중 세무조사에서
거액의 세금이 더 추가 부과되어 버티기 힘든 날들이 계속되었다.
마지막까지 힘이 남아 있는 한 최선을 다해보자며 몸부림치던 1998년 가을.
부모님 차례를 집에서 물이라도 떠놓고 지낼 수 있게 추석만이라도 무사히 넘길 수 있게 해달라고 소원할 때였다.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아내에게 현재 처한 상황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마음의 준비라도 하게 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으로 아내와 단 둘만의 슬픈 여행을 떠났다.
해운대 달맞이 언덕에서 출발하여 바닷길을 따라 7번 국도를 지나며 아내에게 회사 상황을 이야기했다.
이미 조금 눈치를 채고 있었던 아내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 시작하자며 위로하던 아내가 팔공산갓바위로 가자고 했다.
경주를 경유하여 4번 국도를 따라 만불사, 영천을 지나며 평정심을 찾은 아내는 절망의 결심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며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갓바위로 열심히 올랐다.
살려달라며 정성을 다한 108 재배로 무릎에 핏멍이 배이고 부산 쪽을 향해 바라보니 안개가 자욱했다.
돌아오는 길에 찾은 해질 무렵의 영천 만불사 대웅전. 저녁 공양을 하고 밤이 깊도록 합장하고 기도하던 아내.
어두워진 4번 국도를 달릴 때 어쩌면 살 수 있는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다.
.... 아직 애들한테는 이야기하지 말자. 하루라도 더 행복하게...
그 후,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유난히 대구로 가야할 일이 많아지고, 자연히 경주 대구 간 4번 국도를 자주 지나갔다.
모든 것의 끝에 선 순간에도
갓바위 앞을 지날 때마다, 만불사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 다해 진실로 소원하고 애원하며 지나던 애끓는 4번 국도였다.
안개 짙은 날 밤이든, 가을비 내리는 날이든, 가로수 낙엽지던 저녁 무렵이 든 기도는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해 질 무렵,
대구에서 가능성은 적지만 회사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또 한 번의 기대를 걸어놓고 돌아오는 길에
갓바위와 민불사의 중간 지점인 임포마을에서 전혀 알지 못했던 돌할머니를 느닺없이 찾아들어가게 되고
그날, 내게 다가온 불행의 끝자락에서 삶을 놓으려는 순간을 막아주고 모든 상황이 끝날 때까지 도와준 사람.
고마운 인연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19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