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과 회상 1999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의 지푸라기

SHADHA 2025. 2. 25. 09:03

 

 




.... 밤에 나는 두 사람의 인간을 보았다.
최대의 인간과 최소의 인간을,

그러나 그들은 어쩌면 그렇게 서로 닮았는지,
최대의 인간에게서 너무나 인간적인 것을 보았다.
최대의 것도 너무도 왜소하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나의 권태이다.
그리고 최소의 것도 영겁이 회귀한다는 것.
이것이 노든 생존에 대한 나의 권태이다.......... 니체



1.

..... 당신은 안돼!
다 끝났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해 달라고...

알베르 까뮈, 장 폴 사르뜨르, 니체.
철이 들 무렵부터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에 심취한 탓으로
신의 존재나 종교를 부정하지는 앉지만
오래된 잠재의식 속에서 그런 것에 의지하지 않았다.
언제나 의존하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 있다.
인간의 힘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난 할 줄 모릅니다.
난 할 수 없습니다.
난 못합니다.라는 말을 죽을 때까지 하지 않겠다는 것이 거기에 기인한다.

그러나 회사가 커질수록 외로움은 비례하여 더욱더 커지고,
혼자 판단하고 책임져야 하는 수많은 사건들과 고뇌 속에서
도무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해 질 무렵 대구에서 가능성은 적지만 회사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또 한 번의 기대를 걸어놓고 돌아 내려오는 길에
갓바위와 만불사 중간 지점인 임포마을메서 알지 못했던 돌할머니를 찾아들어가게 되고
소원을 빌고 들려는 돌이 꼼작도 하지 않아서 내 소원을 들어줄 모양이다 위안하고 나오는 길목에
무슨 까닭인지 작은 다리를 건너서 우연히 찾은 작은 보살집
외출을 나서려던 여자 보살은 지금은 봐줄 수 없으니 그냥 돌아가라고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리고는 한참 마당에 선 채로 내 얼글을 들여다보더니... 이 양반은 봐줘야 되겠네
불상을 모셔놓은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앉자마자
... 당신 밥을 먹던 자들이 당신 목에 칼을 들여대고 이놈 저놈 다 도둑질해 가고 배신하고 난리가 났네.
관재수에 여기저기서 치고 들어오는데 무슨 재주로 막어!
못 막는다. 차라리 죽는 게 편하지, 이미 산 목숨이 아냐.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어, 진작에 막았어야지, 회사에 딸린 식구가 200명이 족히 넘네
그 식구들 다 어떻게 해. 방법이 없어. 돈보따리 싸들고 와도 살릴 수가 없는데, 
당신은 지금 땡전 한 푼 없이 다 털려버린 거지꼴이네.
내 이 짓을 하고 나서 당신처럼 꼬인 사림 처음 본다. 그냥 가세요.
일을 해도 너무 늦어서 안돼! 살릴 수가 없어, 내가 눈물이 나서 더 봐줄 수 없으니 그냥 가세요.

 

그냥 가라고 해놓고 안쓰러웠는지 아주 못 견디게 힘들 때 전화라도 하라며 건네준 붉은 명함 받아 들고

영천선 단선 철길을 건너 돌아 나오는 길에서 쪽 산 너머로 이미 거의 다 넘어가버린 햇살로
검불게 물든 하늘에 보인다.
늦가을 마지막 꽃을 피운 길 옆 코스모스 꽃잎은 연분홍, 보랏빛으로 가을바람에 가냘프게 흐느적거리고
추수가 끝난 들판을 지나 보이는 작은 간이역. 
임포역의 고즈넉한 전경이 가로수 너머로 외롭지만 평온해 보이는데,
그 한쪽 편에서 처절한 한숨과 한탄이 절망 속으로 들어서는 임포의 가을밤.


2.
사형 선고를 예감하던 죄지은 사람이 그래도 마지가 기대를 한다.
혹시 살 수 있는 길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그러나 결론은 사형선고.
그랬다. 이미 결론은 나와 있었다.

.... 전보다 더 끝에 와 있죠?
어제쯤 전화 올 줄 알았는데, 왔다 간 후로 하루도 머릿속에서 사장님이 떠나질 않았어요
지금 빨리 올라오세요.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다.
영천에서 보살을 만난 이후, 간파된 현실, 혹시나 하는 희망은 접어두고
보살의 예언을 보란 듯이 뒤집기 위하여 죽을 각오로 싸웠다.
어차피 끝날 목숨이라면 두려울 게 없잖아 하고 버텼지만 그 파멸의 덧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심지어는 가장 가까운 측근들 마저 폐업을 종용하기 시작하였다.
폐업을 하면 관공사나 대형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보증보험에서 보증을 받아야 하는데
폐업을 하면 엄청난 금액의 보증 위약금을 보증한 법인에서 갚아야 하는데, 
그러면 법인의 대표인 나와 등록된 법일의 이사들이 그것을 다 책임지고 갚아야 한다.
나야 어차피 끝나는 것이지만 이사들까지 다 망하게 되는 아픔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너무 지쳐서 주저앉아버리기로 한 순간들이 다가왔다.
마지막까지 치달아서 밤새 잠 못 들고 고민하다가, 최종 결심을 텅 빈 방 안을 오전 내내
서성거리다가 아이들의 피아노 위에다가 아빠가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편지를 남겼다.
내가 없어져야 가족들 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고, 나 때문에 힘들어야 할 사람들에게도
속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울컥 치솟는 슬픔을 감당할 수 없어서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
... 자! 이제 회사로 가서 도장을 찍어주자
양복을 입으며 안주머니에서 법인 인감증을 찾아 확인하려는 순간 손에 잡히는 종이쪽지.
보살이 건네준 붉은색 명함.....

 

3. 
평온한 임포마을.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커피 배달 보따리를 든 채 어디론가 향하는 미니스커트 아가씨 너머로
겨울로 향한 마자막 가을의 끝자락이 보이고 작은 개울을 가로지른 작은 다리로 보이는 임포역.
다시 태어나 저 작은 간이역의 역무원으로 살 수 있다면, 어떤 욕망도, 야망도 없이 살 수 있다면
기차가 오지 않는 시간이면 나무 그늘 아래 조용히 앉아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나 가와바따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을 텐데..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밤이 깊어질수록 
징과 북을 두들기는 소리가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야산과 숲 나무사이를 타고 적막을 찢어내며 하늘 언저리까지 다가갈 듯,
애절하고 청아한 징소리가 절규를 한다.
늦은 가을밤은 뼈마디가 시리도록 춥고 전생에 죄 많이 지인 자의 한숨소리가 깊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였던 자가 무속의 제단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절을 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아지경으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수 십 번의 절을 한다.
버텨야 한다며 머리 조아리고 앉은 사람 앞에 한을 지닌 영혼들과 가여움의 한풀이로 이어지고
서글픈 흐느낌, 인간의 힘으로 감히 낼 수 없는 소리와 징소리.
마지막 징소리가 하늘 끝에 다 퍼졌을 때,
가볍게 떨리는 몸. 투명한 현기증, 깊은 산 중에 밤 잠을 잃어버린 새소리.
피워놓은  모닥불 사이로 한 줄기 냉한 바람이 심장 깊숙이 파고들었다
깊고 깊은 밤에.

... 어질어 너무 어질어, 이런 양반이 어떻게 사업을 했어?
정이 많아서 정에 치우쳐 일을 그르치네,
그러니 이 사람, 저 사람들이 다 자기 속만 채워도 모르고..
이제는 걱정하지 마세요, 사장은 살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크고 많은 힘든 일들이 많이 생길 겁니다.
힘이 들어도 포기하거나 용기를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사람들하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장님에게 주어진 운명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용감하게 밀고 나가세요. 그러면 안 되는 것이 없을 테니까...


4.
뒤돌아 보지 말고 그냥 가세요. 인사도 하지 말고.

이미 눈에 익은 영천 경주 간 4번 국도로 접어들기 위해 철도 건널목을 향해갈 때,
논둑길 좁은 길들을 너무도 환한 달빛이 비치고 있어서 어두움 속에서도 작은 행복감이 스몄다.
...... 그래, 포기히지 말자!
내가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다 수습할 때까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아픔이 온다 하더래도 헤쳐나가자.
어차피 난 이미 죽음 목숨이었으니,

지나는 길목.
달빛 밝은 임포역에다가 재기의 사과나무 한 그루 심으니
달빛보다 더 말고 밝은 미소를 가진 나의 두 , 사랑하는 딸들의 얼굴이 보인다.
또 다른 날의 새벽이 동쪽으로부터 오고 있었다.

그 후,
묘하게도 심긱한 고비들이 하나 둘 넘어가기 시작했고, 
절대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중요한 일, 세 가지가 우여곡절 끝에 해결되면서
그 일에 연류, 관련된 사람들이 다 짐을 벗게 되었고,
그로부터 5개월 후 수습할 수 있는 것을 다 수습한 다음,
폐업 수순을 밟고 다시 재기의 발판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무신론적 실존주의가 팔공산 갓바위와 만불사의 중간 마을임포마을에서
우연히 살아남기 위해 잡은 지푸라기.

 

....1999년<독백과 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