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魚回鄕(부산)

이기대 하늘과 바다와 산

SHADHA 2025. 2. 26. 09:00

 

 

하얀 골목길을 돌아서면

푸른 바다가,

또 다른 골목을 돌아서면

푸른 바다가 보이는

까뮈의 연안 알제리 해안도시처럼,

 

해송 숲을 돌아보면

푸른 바다가,

또 다른 솔 숲을 돌아서면

야망이 부재중인 사람의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이기대.

 

그래서 나는.

알제리의 지중해 연안과 이기대를 사랑한다.

 

 

 

1. 순결

 

산 하나
동해바다에 빠졌다.

 

산 하나
푸른 하늘에 빠졌다.

 

솔 숲 가득한 산 하나.

산과
바다와 하늘이
서로 빈정거림도 없이,
나무람도,
의심함도 없이 제자리를 지키어,
산 오르며 보는 하늘,
내리며 보는 바다.

해풍으로 목청을 틔운 새들의 노래,
이 틈새,
저 틈새로
잘 어우러지게 핀 해바라기.

속 마음 다 털어내어
소유욕 0 이 되는 날까지,

산과 하늘과 바다의
순수한 숨결 곁에 머무르며,
슬픈 전설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이기대.

 

 2. 열정

 

아 ! 비열한 짓

 

숲 사이로 숨 죽이고 숨어서

보아서는 안될 광경들을 훔쳐본다.

 

어느 해 질 무렵에

서쪽에서 몰래 다가온 하늘의 금빛 햇살이

솔 숲사이로 깊숙이 파고들어

연분홍 들꽃에게 희롱 짓.

영원히 남아 있을 수 없으면서도,

금세 떠나갈 것이면서도,

야생 들꽃의 순결을 유린해도 아름다운,

 

여기저기

극적인 흥분 상태로 

악! 악

소리 지르며 오르가슴에 이르는 숲.

 

산기슭아래 작은 계곡들은

또 다른 하늘과 바다가

은밀히 만나서 밀회를 즐기는 사랑 호텔.

 

밤이 깊어지면 즐수록

점 점 더 하나로 결합되어 가서 격정 속에 빠져들고

게세지는 하얀 파도.

견딜 수 없다는 듯 꿈틀이며 숲을 쥐어 뜯는 바다 손길.

끝내 참지 못하고 

소리 내지르는 하늘.

 

해 질 무렵의 이기대는

열정을 잃은 의기소침한 사람에게

당혹감과 함께 

이제 살아 움직이라고 한다.

 

 

 

3. 소망

 

굳이
살아야 한다면,
그래서
다시 살아야 한다면,
죽어야 할 날을
손가락으로 헤아리지 말자.
죽어야 할 날을
안타까워하거나  두려워하지도 말자.

그렇게 내딛는 한 발,
내딛는 한 발마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고,
숭고한 바람과 징조가 만나고,
삶과 자연과 내가 만나니,
순간순간
만족!

굳이
살아야 한다면,
그래서
다시 살아야 한다면,
죽어야 할 날을
손가락으로 헤아리지 말자.
죽어야 할 날을
욕심내거나 끌어가려 하지도 말자.

 그저
하늘과 바다와 산이
제자리에서 초연히 어울려
좋은 숲을 이루는
이기대처럼만 살게 해달라고,

소망하고.....

 

.... 1999년 <이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