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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a03 땅거미 속에서 만난 고독한 꽃 본문

建築과 抽像

a03 땅거미 속에서 만난 고독한 꽃

SHADHA 2004. 1. 25. 20:51




S p e c i a l  C o l u m n
2002


11월 프랑스 마레지구에서 그룹전을 하시는

푸른숲님을 위한 특별 칼럼입니다.





땅거미 속에서 만난 고독한 꽃



바람 부는 섬









고적함이 느껴지는 섬,

바람이 불면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다.


거센 바람 소리 같았던

샤토 브리앙 백작의 어린 시절.

비극적이고도 환상적인

19세기 불문학의 대가였던 그와,

쓸쓸하고 고색창연한

콩부르성은 떼어 놓을 수가 없다.



- 오늘의 내가 이루어진 것도,

내 일생동안 이끌고 다녀온

이 권태에 처음으로 전염된 것도,

나의 고통이요 나의 쾌락인

이 슬픔에 물든 것도,

콩부르의 숲에서였다.

그곳에서 나는

내 가슴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다른 가슴을 찾아 헤맸다.

그곳에서 나는

내 가족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그곳에 그의 이름이 복권되고

집안의 재산이 쌓이기를 바랐다.

시간과 혁명이 씻어간 악몽들......

어머니는 고통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재는 무덤 속에서 파헤쳐졌다. -



후박나무 꽃이 비밀스럽게 피어나면,

흩어져버린 친구들을

저 바람 부는 섬에서 만나고 싶다.


묵묵한 돌 틈 사이로도

바람은 어김없이 분다.

색색으로 이어진 풀들은

육지에 두고 온 선망이다.

의지하는 나무는 당신과 나의 모습.

언제나 당신과 나는 섬.

바람부는 그 섬에 가면,

우리 맞닿지 못했음을 애석해할까?

쓸쓸하여라.


강렬했던 열정이 식고,

슬픔에 전염된 얼굴로,

나를 다시 들여다 보았지.

삶의 태피스트리는 회색과 보라색.


바다의 개펄 길을 따라가며,

그 때 그 얼굴들,

외로움을 견디던 그 시간을 더듬어보고 싶다.


바다 속에 떠있는 섬.

거친 파도를 껴안으며

잠들고 싶어라.

오래 오래 말없이......

샤토브리앙, 콩부르성,

바람 부는 섬, 암초 위의 묘혈.


머리카락 날리면,

바다가 울면,

슬픔과 폭풍을 이겨내지 못한

내 어리석은 마음을 저 바다 밑으로 버린다.

바람 부는 저 섬 한 구석에

짙은 회한 엮어서 날려 보낸다.


너 하나로 나를

다 채우지 못했던 어리석음,

너의 마음 결코 못 받은 내 이기심,

이제는 삭제한다.


섬, 꿈...


강물은 지나가지만 바다는 남는다.








그리움








샤토브리앙을 간절히 사랑했던 뒤라스 공작 부인.

절절하게 쓴 향수 편지도,

월계수 잎사귀에 적어보낸 사랑도,

샤토브리앙의 마음을 흔들진 못했다.


뒤라스 공작부인의 어떤 몸짓, 어떤 눈길도,

샤토브리앙에겐 여자일 수 없었다.

늘 친구나 다정한 누이 정도라는 처절한 거리감...

미모를 갖지 못한 뒤라스 부인은

그 운명을 참담한 심정으로 견뎠다.


어두운 숙명.

가슴이 무너져 내려도,

뒤라스 부인은 내색하지 않았다.


샤토브리앙이 여자로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침묵으로

뒤라스 부인에게 보낸 유일한 선물,

삼나무 한 그루.


샤토브리앙의 단호함,

거절한 남자의 마음.

조금 열린 저 커텐 너머처럼

그 가슴이 늘 궁금하다.


진심이란 말인가?

진심이라고 해도 때론 커텐 속에서,

꽃 침대에서

그의 진한 애무를 받고 싶다.

그의 숨결을 느끼고 싶다.

작은 몸을  수줍게 열어

뜨겁게 사랑하고 싶다.



삼나무는 하늘을 찌를 듯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지만,

사그라져 가던 사랑은

이내 흔적도 없이 하늘로 사라졌다.


떠 있는 보라색 달은

변함없는 사랑의 맹세일까?

돌아오리라는 사랑에 대한 믿음일까?



나는 이제 이 땅 위에서

그이를 만나지 못하리라.

뒤라스 부인은 니스 해변에서

이 말을 사랑의 아쉬움으로 남기고,

못난 여자의 삶을 마감했다.

사랑했지만

결코 사랑받을 수 없었던 여자의 비극.


하지만 샤토브리앙은

먼 훗날 그녀를 이렇게 회상한다.


- 뒤라스 부인을 잃고 난 뒤

그녀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내게 그토록 정성을 바친

사람들의 마음에

온당하게 응답하지 못한 것을 자책한다.

우리는 자신의 성격을

잘 다스리지 않으면 안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무덤 속으로 떠난 뒤

무엇으로

우리의 잘못을 돌이킨단 말인가.

죽은 뒤의 숱한 눈물보다는

생전의 웃음을 얼마나

더 귀하게 여겼을 사람들인가? -



언제나 땅거미가 밀려오듯,

못다한 사랑의 결별 후에

그리움은 아프게 남는다.


땅거미 속에서 만난 고독한 꽃.

남은 시간은 늘 충분하지 못하고,

우리의 푸른 환상은

또 다른 그리움으로 가슴을 채색한다.

끝내 외면했던 후회스러운 덧없음이여.

하얀 그리움이여.

다 태워버리지 못한 열정이여.....

이젠 재만 남았구나.







내 마음에 흐르는 강








저 강물을 건너면

내 사랑, 손을 뻗고 있을 것 같다.

변화무쌍한 구름처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감정들이

푸른 강물 위로 부유한다.


흐드러지게 핀 분홍꽃 더미 사이로

강바람이 불가능한 사랑을 예고한다.

샤토브리앙은 진정

추녀였던 뒤라스 부인이 싫었던가.

그녀가 내민 손수건 한 자락에

흔적마저 남기기가 싫었던가.

무정한 사람.



골짜기의 백합, 발자크가 떠오른다.

고독했던 발자크의 가슴에

사랑의 불을 켜준 베르니 부인.



-당신이 실제로 훌륭한 분이건, 아니건,

아름답건, 추하건,

그것은 당신 자신이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당신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오직 저의 판단일 뿐입니다.-



성년에 입문하던 발자크의

황홀한 첫사랑과 번민의 기록은

저 푸른 강물 밑바닥에 숨죽이고 있다.

아치 너머 노란 창은 북으로 나 있을까?

북쪽은 춥지만,

홀로 하는 사랑은 더 춥고 기가 막히다.


강물 속으로 침몰되어 가던 그 사랑,

역시 이룰 수 없었다.

엄마 같은 연상의 여인.


텅 빈 하늘 아래로

소용돌이치는 강물 끝에는

어떤 물안개가 피어 오를까?

차라리 누런 황톳물이 흐르면

실연해도 괜찮지 않을까?

저 분홍 꽃더미 속에서 목놓아 울리라.

저 꽃 다 시들어 버리기 전에.



- 새로운 영혼,

다채로운 색깔의 날개를 지닌 영혼이

유충의 껍질을 깨트렸던 것이다.

내가 찬미하던 별은 푸른 하늘에서 떨어져

그 빛과 반짝임과 신선함을 간직한 채

결국 여인으로 변한 것이다.

나는 사랑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갑자기 사랑하게 되었다.

강렬하게. -


블루는 우울,

노랑은 환상...


물방울이 되어 하늘로 가 버린

인어공주를 생각한다.

왕자의 목숨을 구해주었고,

왕자를 사랑했지만,

인어공주도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했지.

왕자를 죽여야만 인어공주로 돌아올 수 있었기에,

사랑하는 남자를 차마 죽일 수는 없었기에.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랑의 종말.

안 녕.




난 혼자 밥을 먹었고,

혼자 사랑을 했고,

목욕을 했고, 편지를 썼고,

홀로 깬 새벽에 아파서 울기도 했다.


금방 떠날 것처럼 초조해서 잠 이루지 못했고,

영원히 살 것처럼 흥분하고 들뜨기도 했다.

차에서 슈베르트를 들으며 운전하다 또 울었고,

마음대로 살고 싶었던 울적함에

오래 누워 있기도 했다.

우울이 내 옆구리에 꽉 차 오르면,

오래도록 잊었던 담배를 피우고도 싶었다.


내 마음에 흐르는 강은

그렇게 굽이쳐 흐른다.

저 강물 위를 맨발로 걷고 싶다.

새벽이라면 내 마음이 더 잘 보일 듯하다.



내 마음에 흐르는 강,

그 물결 속에 맴도는

내 사랑, 내 그리움,

조금도 소강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

그리고 늘 파도가 친다.

그 날 그 눈물과 함께...


내 일기예보는 언제나 회색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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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칼럼은 이 방 독자이신

푸른숲님께 헌정하는 칼럼입니다.

푸른숲님께 기념으로 드리고 싶은 글이라서,

마음 들여서 썼습니다.


푸른숲님께서는 서양 화가이시고,

오는 11월에 프랑스 마레지구의 갤러리에서

그룹전을 하실 예정입니다.

그동안 프랑스 파리, 일본 동경과 교토, 미국의 뉴욕,

그리고 국내에서 매년 많은 전시회를 하셨지만,

다시 한 번 축하 드립니다.


보잘 것 없는 글을 멋진 칼럼으로 만들어 올려 주신

shadha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울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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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님의 파리 전시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성공적인 전시회가 되시길 빌겠습니다.

푸른숲님을 위해 저희 칼럼에 귀중하신 글과 자료를

제공하여 주신 여울 소나무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shadha드림.



繪畵....푸른숲님

글....여울소나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