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아스라20 Re:나를 위해 한 장의 기차표를 산다 본문

아스라의 첼로

아스라20 Re:나를 위해 한 장의 기차표를 산다

SHADHA 2004. 2. 8. 15:23


아 스 라


C03


Re:나를 위해 한 장의 기차표를 산다.

08/14








비가 옵니다.
빗소리를 핑계삼아 한 장의 기차표를 사고 싶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울려 나오는지 모를 그 '울림'을 따라나서고 싶습니다.
꽃잎의 재를 삭이며 비는 내리고
그 빗속에 그어진 덩그러한 녹슨 종 하나를 들고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습니다.
긴긴 기차 안에서 풍경들을 문지르며
조금씩 바뀌는 계절의 변화를 기울어진
내 인생의 하오인양 아프게 즐기면서.~~

저 빗방울이 영겁의 물방울은 아닐까요?
잠시 비껴가는 시간의 어느 길 모퉁이를 돌며
흐려진 산하와 골짜기의 안개
거기 비죽이 햇살마냥 웃고 있는
야생화의 군락을 스쳐가기도 하겠지요.
상념처럼.^^

어느날 지구를 떠나게 될 때
야생화 가득 핀 산하를 내려다보면서
그 하얀 절벽이 지독히 그리워질지도 모르지요.
뼈저린 후회와 함께.^^

그대는 달빛 하얀 메밀꽃 밭을 알고 있나요?
개구리 우는 논두렁 길을 이슬에 젖어 거닐어 보셨나요?
기차가 터널 속을 지날 때
한웅큼씩 바람에 실려 오는 천리향 냄새를 맡아 보셨나요?
상념의 흰 띠마냥 흐르는 강줄기를 몇번이나 건너 보셨나요?
비온 후 산협에 걸리는 오색의 프리즘을 만져 보셨나요?

항상 혼자 떠나기는 싫었습니다.
따스한 동행이 그리웠습니다.
풀꽃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결처럼 무엇엔가
내 향기를 쏟아줄 흰색의 꽃들이 그리웠습니다.
그렇게 말을 걸고 싶었습니다.
피어오르는 환타지의 불꽃을
그대와 끝없이 나누고 싶었습니다.

길가에 배롱나무들이 즐비하게 보입니다.
분홍색,선홍색.그리고 흰색.
아, 무슨 꽃이든 흰색이 주는 느낌은 너무도 강렬합니다.
무언가 깊이 나를 잡아당기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의 촉수를 느낍니다.

다시 비가 그칩니다.
뜨락에 채송화 엷은 꽃 하늘하늘 뒤섞으며
빗방울은 이내 숙어집니다.
살을 녹이는 여름과 영혼을 시리게 하는 가을 어디쯤
지나가다 마주치는 절경이 있습니다.
사람과의 마주침 속에 유난히 가슴저린 순간들이 있듯이.^^

가을비는 아마도 화이트 와인을 닮아 있을 것 같습니다.
서걱이는 책장 너머로 그 옛날 접어 두었던 꽃잎몇장.
툭 책갈피에서 떨어지는 어설픈 그니의 사진처럼
지금은 향기로운 술이 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티벳의 깊은 골짜기에 흐르는 신비한 월화향의 그 내음처럼~~

호박꽃 초롱같은 어두운 등잔아래 누워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는 어머니의 군내가 그리워집니다.


푸른샘의 기차를 따라가면서  아 스 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