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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추억의 용두산공원 산책 본문

靑魚回鄕(부산)

추억의 용두산공원 산책

SHADHA 2013. 2. 26. 09:56

 

 

 

추억의 용두산공원산책

사랑이 꽃피던 계단길의 추억

중구 겨울여행 3

 

 

 

그녀가 한번 웃을 때마다 가슴이 떨려오고 오금이 저려왔다.
도무지 마주 볼 수가 없어 고개를 숙이고 탁자 아래에 놓인 내 발만 내려다 볼 수 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학생으로  나름대로는 폼나게 사복을 차려 입었다고 생각하였으나,
아무리 봐도 기성품 싸구려 구두가 못내 마음에 걸린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 마음에 들더라..네가 골랐지 ?
...그...그래...기호하고 같이 가서 골랐다.
...네가 만나자고 그래서 많이 놀랬다....무슨 일인데 ?
...그게...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얼마전인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같은반 절친한 친구 5 명이 늘 함께 미팅을 하러 몰려 다녔으나,
기호라는 친구와 난 그들과 개인적으로 친하긴 하지만 그렇게 학교밖에서 어울려 다니진 않았다.
영도의 모여고 여학생들 7명이 크리스마스 파티 미팅에 나오기로 하는 바람에

기호라는 친구와 나는 숫자 맞추기 위해 갑자기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된 일종의 땜빵용이었다.

교통부 산복도로위 분식집 이층 다락방에 둘러 앉은 파티.
처음으로 그런 자리에 참석한 우린 좌불안석이었고  낯가림에다 어색하기가 그지 없었다.
그들끼리는 서로 안면이 있는 터라 어울리고 즐기고 있어서 그 친구들을 대신하여

기호라는 친구와 나는 여학생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대신 사러 가는 심부름을 했다.

우린 어색하고 가시방식같은 그 모임자리보다 그것이 훨씬 편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우린 친구들 모임의 고정 멤버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

서면 시장통안의 친구 형이 운영하는 가게<우드스탁>이라는 지하 까페에서의 모임이 있었다.
그것은 그 여학생들 중 가장 예쁜 여학생(요즘말로 퀸카)을 두고 친구 중 3명이 경쟁이 붙어서

친구의 우정을 깨느냐 마느냐 하는 심각한(그때는..)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이었다.
회의 결과 그 친구들 중 가장 중도적인 입장에 있는 나에게 중대한 과업이 떨어졌다.

내가 그 여학생을 만나 친구 3명 중 한명을 선택하라고 요구하고, 그 결과를 친구들에게 전하면
친구들은 우정의 변함없이 그 결과에 승복하기로 한 것이었다.
멋진 회의 결과였다....

 

자갈치 시장 입구에 있던 개봉관 동명극장 맞은편 건물 1층에 있던 송원 양과점..

거기서 그녀를 만나 내게 주어진 우정의 과업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말하기 곤란한 이야기가 ?
...그런건 아닌데...니는 우리 친구들 중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노 ?
...왜 그러는데 ?
...니 때문에 친구들 우정에 금이 가게 생겼다. 그래서 니가 좋아하는 한사람만 만났으면 좋겠다.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도대체 숨을 쉴 수가 없고 얼굴은 또 왜 그리 달아 오르는지...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그녀가 말했다.

...우리 용두산 공원에 바람이나 쉬러 올라갈래 ?
...그.그..그래..

 

우리는 나란히 광복동 거리를 지나 용두산 공원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기는 했으나 추운 줄도 몰랐다

광복동에서 용두산까지 오르는 계단은 194계단으로 한참이나 올라야 했다. (지금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 
허지만 그녀와 단 둘이 같이 걷는 것 만으로도 마치 꿈꾸는 것만 같았다.
그 계단이 거의 다 끝나고 용두산 공원에 들어설 무렵, 그녀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나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와 광복동, 남포동의 화려한 불빛들이 같이 어우러져 정신마져 혼미해 지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향긋한 그녀의 입김이 내 얼굴에 닿는 순간, 뜻하지 않은 그녀의 질문이 날아왔다.

...니는 우리 친구들 중 누구를 좋아 하는데?
...나는...없다...잘 모르고...
...나는 ?
...아니...저기..아...그러니까..
...내가 별로 마음에 안드는 모양이네 ?
...아니, 나도 사실은 니가 좋지만 이미 내 친구들이 널 좋아 하니까...
...난, 니가 좋다. 너희 친구들 중 한사람하고만 만난다면 너하고 만나고 싶다....

 

우여곡절끝에 친구들의 동의하에 우정도 지키면서 그녀와 나는 공식연인이 되었고,

군대가기 전까지 좋은 친구가 되어 여행도 같이 다니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고

그리고 군대생활 3년동안 그녀때문에 군부대 사단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군생활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사단에서 애인사진 콘테스트하면 무조건 1등을 했고, 연애편지 콘테스트에서도 1등...

 

제대 후 서울을 오르내리며  명동과 종로의 커피숖 반쥴 등...수많은 추억을 남기지만

그녀는 모 화장품 회사의 모델이 되면서 점점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빠져 들고,
아직 순수한 마음으로 그녀를 아끼려 하는 나. 세상사는 사고 방식의 차이가 우리를 점점 멀어지게 했다.

그녀와 완전히 결별하고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할 때 플래트 홈에서 흐르던 노래

바브라스트라이샌드의 <The Way We Were>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노래이다.

그러나 그녀는 내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의 여인인 첫사랑 여인이 되었다.

 

shadha의 아주 오래된 추억 이야기 <다음 칼럼시절 쓰고, 2004년 2월에 다시 올린 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