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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성지곡 수원지 가을의 추상 본문

靑魚回鄕(부산)

성지곡 수원지 가을의 추상

SHADHA 2014. 11. 20. 09:36

 

 

성지곡 수원지 가을의 추상

부산의 11월 가을 1

 

 

 

인위적인 사회 속에서 도피하고 싶어 하는 나는 순수한 자연 속으로 도망을 쳤다.

요즘은 하루 걸러 한번씩 도망을 친다.

그 도피처에서 순수한 자연을 자주 만나 친해지다 보니

예전에는 미처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내게 보여 주었다.

그 속살과 속마음을 열어 주었다.


언제나 자연인으로 살고 싶어 하면서도 전형적인 사회인의 굴레를 스스로가 쓴다.

목에도 굴레를 걸고, 다리에도 그 굴레를 걸고 하여

헤쳐 나올 수 없는 속인이 되고 나서야 늘 자유로운 자연인이길 원한다.

내 몸 안에 흐르는 피가 그런 모양이다.


이제는 피해 갈 수도 없는 길목에 서서

종잇장처럼 얇은 살얼음판이 깔린 겨울 강을 건너야 하는 가난한 어부처럼,

높디 높은 절벽사이에다 외줄 하나 걸어 놓고 줄타기를 하는 어쩔 수 없는 삶을 가진 곡예사처럼,

숙명이거나, 스스로가 만든 운명이거나 간에 선택의 여지없이 헤쳐 나아가야만 한다.

버티다 버티다 더 버틸 수도 없을 때 자연 속으로 도피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나 순수 자연의 도피처로 들면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

그동안 선인들이 자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저 멀리서 숲을 보고, 나무를 보고, 꽃을 보았을 뿐이다.

깊은 곳에 있는 생명의 노래를 듣지 못했었다.

그 순수 자연이 가슴을 열고 보여주는 마음을 보지 못했다.

이제 그것을 배워간다.

도피처의 숲에서....

 

어떤 사유로든지,

현재 내게 주어진 운명.

그것이 고통이거나 죽음이라 할지라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 순수 자연 속에서 다시 배운다.

어떤 생명이든 그 생명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을 숲 속에서 보았다.

그것은 예술이며 미적 가치이다.

가치가 있다는 것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고민에 빠지거나,

어슬렁거리며 초조하게 기다리거나 분노해 하거나 우울한 시간에 

그리 산으로 올라 자연 속으로 든다.

그러면 그 자연이 다 잊게 해준다.

가슴에 초록빛 산소를 불어 넣어주고,

눈에 보이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 미술관의 화폭들...

새들의 노래와 다람쥐들의 숨바꼭질 놀이.

개울의 작은 물소리까지 친구 삼아.

그리고 그 자연 속으로 더 가까이 들면 생전 처음 보는 환상적인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있다.

그 속에 머물다 보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그것을 초월하게 해준다.

그것을 초월하고나면 두려움이나 모든 미움이 사라진다.

그것이 순수자연이 주는 교훈인 것 같다.

최소한 나는 그리 느낀다.

 

순수 자연 속에는 절망이라는 것이 없다.

그 모든 것이 그것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나름대로의 역할들을 한다.

개울가에 선 나무들은 나무들대로,

양지에 서거나 음지에 서거나, 

그들은 늘 그 자리에서 서서 꽃을 피우거나, 숲을 이루거나,

새의 둥지가 되거나 이끼의 잠자리가 되어준다.

아무런 불만이나 불평도 없이, 그것이 자연의 위대함이다.

순수 자연 숲 속을 거닐 때면,

나는 아무런 시름도 없이

화랑을 거니는 미술 애호가가 되고

음악을 연주하는 지휘자가 되고

마르셀 프로스트 같은 작가가 되기도 하고

햄릿의 무대 연출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리운 이의 환상과 산책한다 .

자연 속에서는 무엇이든 무한하다.

 

순수 자연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이 다가가

자연의 냄새와 모습을 바라보세요.

아름답고 신비한 그리고 숭고한 생명의 사랑빛이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삶을 느끼게 됩니다.

 

......2003년 11월 가을의 추상  shadha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