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독백과 회상 1999 (24)
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장대동 어느 극장 매표소 창구가 닫혀있다.어떤 영화이든지 상관없이 마지막 상연되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지리산 하얀 눈 냄새를 담은 겨울밤 차가운 바람이 가볍게 일어난다. 집 잃은 한마리 개처럼,이 골목, 저 골목,낯선 거리를 방황하다가 잘못 든 길목에서화려한 홀 복위에 싸구려 모피를 걸쳐 입은 짙은 향수의 여인들이쥐뿔도 없는 사람의 팔목을 잡아끈다.논개가 일본 왜장 허리를 잡아끌 듯 끌어 당긴다. 남강으로 가자!그 하늘에서 얼어붙은 별들을 만나러 가자.어차피 초록은 동색인데 기왕 외로운 형상을 한 것들끼리 만나자.망경동 망진산에 붙은 달.남강에 얼어 붙어 있는 달.달이 두 개 뜬 남강..... 나, 내일 쌀 찍어 짊어지고 갈 수 있을까? 강변 여관방에 햇살이 들어 햇살 따라 남강 강 둑으로 나서니,.겨울..

천왕산, 간월산, 취서산산 기운을 모아서남쪽으로 흐르는 배냇골.그 끝자락에천태산과 마주선 토곡산. 비록순하지 않은 惡山악산 이라도은혜로운 마음과 빛으로 가득 차서온화한 미소를 마금은 산형으로 바뀌어서유유로히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볼 때, 무엇으로 시작하든,무엇으로 남게 되든,깊은 뜻,깊은 고마움의 산으로이름 님께 됨을 소망함으로, 하아,어느 때,하늘 빛, 참 빛으로그 소망이 이루어져서어떤 사람들의 안락한 쉼터가 되고,새 삶을 열어주는 터가 되니, 더 할 욕심도 없고,더 할 소망도 없고, 그저,낙동강을 거슬러 오르는때 이른 철새 때 구경으로 오랜 세월을 지키려 한다. 1998년 초 가을이었다.조금씩 심상치 않은 고통의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할 무렵,예전에 설계회사 실장이었던 내 나이 33살 때, 토목 현황도..

지리산, 가야산,덕유산 3 산 자락을 쥐고 있는감악산 산정에삿된 생각을 털고 서니, 산 빛,하늘빛,이내 열리는 자비의 빛과 바람. 덜 하려거나더 하려거나,탐하려 하지 않음으로,이 山頂 산정에 선근善根을 심고, 허물을 털어내니, 아!살고 죽음이 하나로도道 안에 있고, 홀로 선단송,월여산의 좋은 친구 되어주니외롭지도 않네. 1998년 봄,회사 파트너 건축사 친구와 함께 구마 고속도로를 달려서 현풍 휴게소에서경주에서 온 박교수와 대구의 남사장과 합류하여88 고속도로를 달려서 거창으로 향했다. 대규모 실버타운 건축 설계, 반신 반의 하고 따라나섰는데,감악산 800M 고지 위에 올라서니엄청난 평지가 펼쳐져 있는 풍경을 만난다.... 이루어질 수 있으려나?한동안 그 산정에 연필 선을 이리저리 그으며 꿈을 꾸..

이제야 알았다. 크고, 많고, 꽉 채워져야, 제대로 사는 건 줄로만 알았는데, 작고, 적고, 여백을 충분히 남겨두는 것이야 말로. 사는 고뇌를 그만큼 줄일수 있음을... 욕심은 허영심을 만족시키나, 삶을 복잡하게하고, 가슴앓이를 많이하게 한다는 것을..털자! 그저 순백으로 털어내자. 그리하여 작고 소박함안에 머물더래도 스스로 따스하게 안위하며 살 수 있게,그것을 내게 속한 나의 가족 모두가 그리 느끼며 살 수있는 공간을 만들고, 모든 것을 같이 공평하게 나누자. 다 채우지않고, 여백을 많이 남겨두니 마음조차 여유롭다. 모자라는 것은 하나하나 채워가면 되고, 남는 것이 적으니 버려야 하는 서러움이 없어 좋다. 책 한 권 읽고 채우고. 그림 하나 그리고 채우고, 좋은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 채우고, 무리..

해가 지자,하늘로, 바다로 하나 둘씩 별들이 뜨는 것이다.이윽고 수천, 수만 별이 반짝 빛나고 있었다. 좌천 산복도로에서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든 급경사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서가뿐 숨 한번 내쉬고 다시 걸어 올라서 작은 2층 집 철문 앞에 섰다. 집주인인 나이 든 노부부의 안내를 받고 간단한 면접을 치러야 했다.가족 구성과 반려견 여부, 나와 아내의 직업, 종교까지.고등학교 다니는 딸 2명과 아내의 종교가 불교라는 것을 말하고겨우 통과를 하였다.좁고 가파른 외부 계단을 오르니 작은 베란다와 작은 2층 집에 나타났다. 장롱 하나 넣으면 아내와 꼭 붙어 자야 할 정도의 좁은 안방.아이들 책상 하나 정도만 넣을 수 있는 작은 방,오래된 싱크대와 작은 찬장. 그리고 좁은 마루,안방에서 올라갈 수 있는 낮은 다락..

마지막 7,000배를 다한 날은 옥련선원에서 내려오는 길목에서 어슴프레한 광안리 밤바다를 바라볼 때,머리에서 흠뻑 젖었다 마른 땀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서 말려주는데,이 세상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듯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동쪽에 위치한 백산 옥련 선원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찰이다.IMF사태 이후 모든 것을 다 잃고 난 후인 2,000년,마지막 남은 집마저 압류되어 경매로 넘어가서 우리 가족들이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었다.설상가상으로 모든 것을 다 잃은 충격으로 심장병을 얻어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회복이 다 되지 않은 상태에서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서 낙찰받은 사람으로부터 집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은 처절한 상황이었다. 그리고는 며칠 지나지 않아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집을 이사할 수 있는..

교통부(범곡교차로)는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동네이다.내 나이 9살 초등학교 2학년 때 양복점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충주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와서범냇골 로터리 근처에 양복점과 집이 있었고 그곳에서 부산진 초등학교에 다녔다.그리고 교통부로 이사와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군대를 제대하고 27살때 까지18년동안 살았던 곳이다.그후 결혼을 하고 연산동, 수정동, 대연동, 그리고 용호동에서 살다가 교통부로 돌아왔다.. IMF외환위기로 집과 모든 것을 다 잃고 용호동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서 아무 곳에도 갈 수 없을때.운명처럼 교통부로 18년만에 돌아왔다. 해운대 성심병원에서 퇴원을 하니, 입원하기전 마지막으로 야간 작업을 해주었던 병원 사업계획서를받은 병원 이사장이 그 사업계획서로 국가에서 운영하던 ..

1. 해운대 오션타워 설계하던 해에내 몫 1억 2천5백만 원 중 우선 3천만원 빼와서 어머니와 단 두식구가 된 뒤.17년 셋방살이 설움과 결혼 후 8년 셋방살이을 털고 난생처음 내 이름으로 등기된 나의 집.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 딸과유치원 다니는 작은 딸.아내에게 커다란 희망과 행복을 안겨주게 된 집. 일생 중 가징 행복한 때였다.저녁 때에 가을바람 싱그러운 거리를 가족들과 손을 잡고 산책하며대연동 가구점 많은 거리, 이리저리 돌며아내가 갖고 싶어하던 장롱이며 식탁,아이들의 꿈이었던 이층 침대, 책상에 색깔 예쁜 옷장까지.내가 갖고 싶어하던 최신형 인켈 전축에다 31인치 텔레비전.밤이면 베란다에서새로운 집을 장식할 그림을 그리느라 밤을 새우고, 2. 아이들이 커 갈수록 점점 좁아져가는 24평짜리 크..

니콜 키트만 1. 콧구멍으로 바람이 든다.아주 미미한생명 바람이 든다. 오늘이었는지, 어제였는지,영안실로 실려나간 사람의 냄새가아직 채 가시지 않은병상에 눕혀진 채산소 호흡기가 코에 꼽혔다. 깊은 수면에 빠졌다 잠시 눈을 뜨니중환자실로 처음 들어설 때,하얀 커튼을 사이에 둔 바로 옆 병상에서심한 구갈증의 기침을 해대던 할머니가가족들의 나지막한 울음소리와 함께영안실로 옮겨지고,간호사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하얀 새 시트를 깐다. 죽는 자와 사는 자가어느 길로 가든대기하며 기다리는 공간을하얀 커튼으로 구획하여 공유하는데..나는 살아남는 쪽에 속하는 것 같았다.누가 그리 말하지는 않았지만간호사들의 눈빛에서 그걸 알았다.전혀 연민의 빛이 없었으니..플라스틱 소변 통을 건네 줄 때쌔액 웃는 간호사의 미소가아직 나를 ..

해운대 달맞이 언덕에 올라서면푸른 바다 위로 하늘이 보인다.아주 오랜만에 하늘이 보인다. 완전한 허무의 끝과완전한 희망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겨드랑이 가렵다.푸른 바다와 함께 잘 섞인 하늘그런 푸른 하늘이 늘 잘보이는 새로운 정착지로 날아가고 싶다.아직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불행과 고통이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하늘이 보인다.오래전부터 늘 그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데,바다 위에도,산 위에도,살아있는 사람들 지붕 위에도,내 머리 위에도 늘 한결같이 있었던 하늘이었는데도, 그게 하늘이었는지,지옥이었는지,죽음이었는지,절망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늘 형상을 하고 있어도아무런 정도 없이 문 닫고 있었나?얄궂은 삐짐으로 문 닫고 있었나?있어도 보이지 않던 하늘.있어도 없는 듯 숨 죽이고 있던 하늘. 1999년 ..

단언하건대,시방 나는,유신론자도무신론자도미신론자도 아니다. 그저실존하는 자로서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이다, 몇 가지 생존방식에 거부하지 않고순응하는 사람일 뿐이다. 성냥불빛이든,촛불 빛이든,오래된 백열구 불빛이든,형광등 불빛이든할로겐 불빛이든, 질흙 같은 어둠 속에,절망 속에.홀로 외로이 뜬 배는 배부른 선택을 할 겨를이 없다. 체면이거나,궁극적인 관념과 생색.위선 가득한 이성적 실재론으로 따질 겨를이 없다. 티끌만 한 불빛이라도희망을 향한 나침판을 볼 수 있고작은 등대가 된다면, 나 이외의 힘에 의지하려는 것은 아니다.결국 진흙 같은 어둠 속을 헤쳐나가야 하는 것은 나 스스로 일뿐이다. 그래서 신의 존재를 믿든지,신의 존재를 믿지 아니하든,미신을 믿든지,미신을 믿지 아니하든, 살아남아 실존하려는..

놀랍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떤 것이 기적인지 모르고 산다.크고 작은 기적들을 그저 운이 좋은 탓이겠지라고 하거나 우연이라고 생각한다.크고 작은 만남들과 상황들을 아무런 생각 없이 자가 필요에 의한 판단으로 기준한다.어떤 것이 기적인지 모르고 살아간다. 1.....전에 어디서?.... 기억이 안 나나 보네..... 뵙기는 했는데,.... 전에 요 아래서 커피 마신 적이 있죠?.... 아! 네. 1년 전인 1997년 12월 31일 아침.붉은 티셔츠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책하듯 새로 만들어진 수변공원으로 와서 길거리 커피를 마신 적이 있었다.그 전날에 이미 지급하여야 할 자금들을 결재해 놓고 느긋한 마음으로 한적한 이 바닷가로 찾아와서지나간 한 해의 마무리와 새로 다가올 새해의 구상을 하려고 했다.신년 연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