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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지중해 오디세이, 에리체 그회색의 아름다움 본문

꿈꾸는 여행

지중해 오디세이, 에리체 그회색의 아름다움

SHADHA 2021. 9. 10. 09:00

 

... 버스에서 내리자 한 마을을  지키고 있는 뽀족뾰쪽한 사이프러스와 자작나무의 무성한 숲이 보였다.
그 마을의 빨간색 지붕들은 색이 바래서 파리한 샹앗빛이 되었거나 이끼 때문에 검은색을 띠었다.
축축한 판석이 깔린 골목들은 하늘쪽으로 경사져 있거나 희미하게 조명된 어둠 속으로 휘어져 있었다.
에리체 산 정상에 자리잡은 에리체 시는 짙은 안개로 덮인 폐허의 경관을 이루었는데,
끊임없이 갈라지는 안개사이로 이곳저곳에 고딕 양식의 출입구가 드러났다.
이를테면 산미르티노는 한때 탁한 붉은색이었지만 지금은 연기에 그을린 묽은 분홍색이었다.
노르 만풍과 고딕풍의 건물 앞면들이 여러 세기에 걸친 비바람에  시달린 꼴을 하고 있었다.
그곳은 속삭임이 가득한 곳으로,
햇빛을 듬뿍 쬐는 지중해의 정신적 핵심이면서도 싸늘한 수도원 같은 어둠에 갇혀 있었다.
....로버트 카플란의 < 지중해 오디세이> 에리체 그 회색의 아름다움 중에서

시칠리아의 동쪽 해안에 타오르미나가 있다면 서쪽 해안에는 에리체(Erice)가 있다.
가파른 산 위에 독수리 요새처럼 둥지를 틀고 있는 에리체는 중세 시대의 축소판이다.
대리석으로 포장된 중세의 골목길과 회색빛 돌들로 건설된 성벽과 성당, 그리고 중세의 집들은 소박하고 고요하다.
마치 수도승들이 사는 산중의 수도원 같은 느낌이다.
늘 산을 감싸고 이동하는 구름 장막, 신비한 기운이 담긴 안개와 바람, 주변의 평야지대에서 홀로 우뚝 솟은 에리체는
옛사람들에게 신성한 영토로 여겨졌다. 에리체의 가장 높은 곳에 비너스신전의 유적이 보존되어있다.
비너스 성 건너편에는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아담한 페폴리 성(Torretta Pepoli)이 마주 보고 있다.
이 두 성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단연코 숨을 멎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오래전에 존경하는 지인으로부터 책 한권을 선물 받았었다.
로버트 카플란의<지중해 오디세이>...이 책을 읽은 지 약 12년 만에 다시 책장에서 책을 꺼내어 읽었다.
코로나와 여름 폭염, 가을 장마가 계속되면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오래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쩌면 살아 생전에 가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그곳들을 구글어스를 통해 찾아가서 골목들을 돌아보는 즐거움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