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인도양 페낭의 크리스마스 본문
잠적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인도양의 아침
열대의 하늘과의 어울림에
한점 나무랄 데가 없는 빈랑나무들과
그 그림자들이
초록 잔디밭과 인도양을 향해 뚜렷한 금을 그어 놓고 있다.
....때론,
어떤 존재와 그 형태가 규정된 어떤 선상에서 벗어나려 하나,
이내
부질없는 일임을 쉽게 알게 된다.
테라스 레스토랑,
야자수 잎사귀 사이로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들고,
연분홍 억키꽃으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따뜻한 영국산 홍차와 다양다색한 고급스러운 치즈.
질 좋은 베이컨과 부드러운 빵.
신선한 오렌지 주스와 달콤한 멜론주스.
언젠가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머물고 싶다는 소망을 두고,
그럴 수 있는 합리적인 핑계모색.
.... 어떤 선택에 있어서 늘 지나치게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우리 자신 또한 스스로 선택된 것이 아니기에
굳이,
이것 아니면 저것. 그렇게 단정 지으려 하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는 단 하나의 욕구만으로 결코 충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순발력 있게,
남을 해하지 않는 융통성으로, 탄력 있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살아가고 있는 모든 것은
그것이 살아있다는 그 단 하나만으로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인도양이 주는 평화로움에 젖어 영원히 떠나기 싫은 者.
예약된 귀국행 비행기가 하늘을 향해 오를 때까지,
페낭힐 서쪽 정글 속으로 들어가 잠적하고 싶은
그런 아름다운 아침.
... 1996년 12월 말레이시아 페낭 여행 중에서
인도양의 밤.
멀리
페낭섬의 주도 조지타운이 바라다 보이는
탄중토콩 해변의 Sea Food Restaurant에서
바닷가재와 칠리소스의 게요리로
손가락까지도 포식한 저녁식사.
바투페링기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의
애잔하고도 투명한 말레이 여가수 난의 연가
뜻도 모르면서 우리가 따라 흥얼이니,
말레이인 운전기사도 덩달아 흥이 나서 웃으며 노래한다.
어둠을 작은 호롱불로 불 밝힌 창없는 호텔 로비 라운지에서
꼬냑 섞은 뜨거운 커피 칵테일 한 잔과 연분홍 억키꽃.
천정에서 천천히 회전하는 선풍기의 날개 따라도는
인도양 밤바다의 시원한 밤바람속에
흐르는 섹스폰 연주.
습기 묻지 않은 밤.
밤이 깊어지자
쉽게 잠들지 못하는 세 남자의 해변 산책.
인적이 드물어진 야자수 나무 아래 누워
별도 보고 파도 소릴 듣는데.
백사장 끝자락에 머뭇거리며 침묵하던 이가
새삼스럽게도 찬송가를 멋들어지게 부른다.
인도양의 밤.
바닷소리에 오래 익숙해진 습관으로도,
끝내 쉬이 오지 않는 잠.
크리스마스의 겨울에 듣는 귀뚜라미 소리.
다시
베란다에 홀로 나와 앉아
짙은 커피 한 잔과 담배 한개피
....남자끼리의 여행은 이래서 힘들어...
베란다 천정위로 작은 도룡뇽 한마리가
기어가고 있다.
...1996년 12월 말레이시아 페낭 여행 중에서
1996년 12월 페낭 바투페랑기 해변 호텔
'꿈꾸는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우스 텐보스에서의 추억 (1) | 2025.06.23 |
---|---|
로마에서의 고독, 그리고 집시 (2) | 2025.06.20 |
스위스 루체른의 히어로 (3) | 2025.06.16 |
1993년 3월, 파리에서의 일기 (3) | 2025.06.13 |
나의 젊은 날, 소설 세계와 영화 설국 (1) | 2025.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