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경주 김유신 장군 묘 본문

천년고도 慶州

경주 김유신 장군 묘

SHADHA 2005. 10. 26. 23:58

 




경주 김유신 장군 묘 





문무왕이 그의 부음을 듣고
채백(彩帛)1천 필과 조(租) 2천 석을 보내고,
군악고취(軍樂鼓吹) 100인을 보내 금산원에 예장하고,
유사(有司)로 하여금
비를 세워 기공(紀功)을 기명하고,
민호(民戶)를 배정하여 묘를 수호하게 하였다

....<삼국사기>...






사적 제21호

송화산 중복에 자리 잡고 있는 이 고분은
삼국 통일의 명장 신라 김유신 장군의 묘이다.

김유신 장군은
금관가야국의 마지막 왕 김구해의 증손이며
신라의 명장이었던 서현장군의 아들로 태어나
15살 때 화랑이 되어 무예를 닦고
35살 때에는 아버지와 함께 고구려 낭비성을
공격하는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장군은 김춘추를 도와 태종무열왕이 되게 하고
함께 삼국 통일의 대업에 나서
무열왕 7년(660)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신라군 총대장이 되어 계백 장군이 거느린 백제군을
황산벌에서 무찔러 백제를 멸망시켰으며
문무왕 8년(668) 고구려를 공략할 때도
신라군 총사령관이 되어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이어서 삼국의 영토에 야심을 드러낸
당나라 군사도 물리침으로써
통일의 위업을 완수하였다.
이렇게 혁혁한 무공을 세운 장군을
문무왕으로부터 태대각간이라는 신라 최고의 관작을 받았고
뒷날 흥덕왕은 장군을 흥무대왕으로 추봉하였다.

이 묘는 직경 30m나 되는 큰 무덤으로
봉분 아래에는 병풍처럼 판석으로 호석을 설치하였고
호석 중간중간에는
평복 차림에 무기를 든 12지신상을 배치하였다.
호석의 밖으로는 여러 개의 돌기둥을 세워 난간을 돌렸다.
한편 호석의 12지신상과는 별도로
높이 약 30cm의 납석에 정교하게 새겨
묘의 주변에 땅을 파고 묻어 두었던
12지신상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묘의 앞에는 조선 시대에 세웠던 비석이 있으며
석상은 최근 묘를 수리할 때 세운 것이다

.....자료글 편집....



















'천년고도 慶州'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주 오릉  (0) 2006.02.02
경주 남산 서측 기슭  (0) 2006.02.02
문무대왕수중릉  (0) 2005.08.24
경주 감은사지  (0) 2005.08.24
경주 반월성에 핀 꽃  (0) 2005.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