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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경주 남산 서측 기슭 본문

천년고도 慶州

경주 남산 서측 기슭

SHADHA 2006. 2. 2. 14:45

 




경주 남산 서측 기슭

삼릉, 경애왕릉, 양산재







삼릉 三陵





경주 남산의 서쪽에 동서로 세 왕릉이 나란히 있어 삼릉이라고 불린다.
무덤 주위에 오랜 소나무숲이 무덤을 보호하고 있는데,
삼릉 계곡 능선이 평지와 맞다을 지점 평평한 곳에 삼릉이 있다.
제일 위쪽 무덤은 신라 제8대 아달라왕,
가운데는 제54대 신덕왕릉,
아래는 제53대 경명왕이라고 전해져 오며,
세 임금은 모두 박씨로, 신덕왕은 경애왕의 부왕이며,
삼릉 건너편에 경애왕릉이 있다.

신덕왕릉으로 전해오는 가운데 무덤은 1965년 도굴되어 발굴을 하였다.
무덤 내부가 굴식돌방구조로
돌방 벽면에 병풍을 둘려 세워 놓은 것처럼 동서벽에 색이 칠해져 있는데,
이는 벽화는 아니지만 벽화가 그려지지 않은
신라의 무덤에서는 처음 발견되는 것으로 주목되는 자료이다.
색은 붉은색, 황색, 백색, 청색으로 되어 있어, 이는 5방색과 동일하다.
모두 12폭으로 되어있다. 6세기 이후의 무덤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삼릉의 주인은 신라의 박씨 3왕이라 전해지는데 확실한 기록은 없다.

...자료글 편집...













경애왕릉 景哀王陵





신라 제55대 왕 경애왕은 신라 쇠퇴기의 왕으로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자살했다.
917년(경명왕 1) 이찬(伊飡)으로 상대등이 된 뒤,
신라말의 혼란기에 즉위했다.
왕건의 고려와 견훤의 후백제 등이 강대한 세력을 떨치고 있어서
신라는 더욱 쇠퇴하던 때였다.
왕위에 오른 뒤 고려와 밀착하여 후백제를 견제하려 했는데
, 이러한 의도를 알아챈 견훤이 927년에 신라를 침공했다.
이때 포석정(鮑石亭)에서 연회를 하다가 견훤에게 사로잡힌 뒤
강요를 받아 자살했다.
재위기간중에 황룡사에서 300여 명의 선승(禪僧)이 참여한 모임인
백좌통설선교(百座通說禪敎)를 개최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대규모 선승모임의 시초이다.
경애왕릉은 홀로 외로이 소나무숲 속에 자리잡고 있어
그 역사를 아는 이의 마음에 더 초라하고 외롭게 느껴졌다.









양산재 楊山齋





신라건국 이전 서라벌 일대에는
진한시대로서 6부 촌장이 지배했다.
양산촌, 고허촌, 진지촌, 대수촌, 가리촌, 고야촌등을 일러
진한 6부라 했다.
진한시대 6부촌장 위패를 모신 양산재는
박혁거세왕의 탄생과 서라벌국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설화가 깃든 곳
신라는 바로 6부촌 사람들의 화합과 만장일치라는
민주주의 정신을 기초로 시작된다.

...자료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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