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오정순15 내 몸은 땅, 기억의 공간 본문

줄의 운명

오정순15 내 몸은 땅, 기억의 공간

SHADHA 2004. 1. 27. 12:48


오 정 순




내 몸은 땅, 기억의 공간,

11/15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하였지요.

내 몸은 땅, 기억의 공간

누군가 투명하면 내 기억의 그림자가 그에게서 반사되어 보인다는 것을...

아파트의 맞은편 동을 바라보고

베란다에 서봅니다.

우리 동 건물의 그림자가 그 동의 창문에 추상도안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 창에도 같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 첫경험 이후 무역센타 앞을 지날 때 쯤이면 나의 시선은

당연히 그 건축물에게 시선이 고정됩니다.

개포동에서 넘어오는 길 쪽에서 보면

거대한 유리 화폭이 펼쳐집니다.

무언가 가슴 안에서 울렁거리며

움직임이 부산해 집니다.

장면은 바뀌어도 감동의 여진은 오래 갑니다.

땅은 기억을 흘려내보냅니다.

내 마음의 시선이 닿았던 곳이면 여지없이 그림을 드러냅니다.

격정의 파도타기도 하고 잔잔한 구름의 에스코트를  받기도 하고

포근한 깃털에 싸인듯 감미롭기도 하고..

창문에 그려지는 다양한 무늬처럼 삶의 무늬가 새겨져 들어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눈감고 내 안의 그림을 바라볼 수 없어 똑바로 눈을 뜹니다.

바깥을 살핍니다.

공간은 이미 이동되어 있고 나에게는 다른 유리같은 영혼이

나를 비추이고 있습니다.

내 몸의 기억의 공간 이미지가 지하나 창고의 이미지를 닮았다면

조용히 기다리는 것도 바둥거리는 것보다 더 빨리 그 곳에서

빠져나오는데 상수일 수도 있지요.

눈을 뜰 수도 있고 감을 수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공원을 주로 다녀왔습니다만 파격의 아름다움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퍼득이는 생선회맛이 입 안에 달라붙은 듯 감미롭고,

산굼부리의 갈대가 역광에 빛나며

눈가에서 은빛 파도를 칩니다.

옛날같은 탄성은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형언하기 어려운 허무를 보았습니다.

돌아와 컬럼을 열어보니

어느 날의 감동이 사진과 마주치며 튀어나와 가슴을 뻐근하게 칩니다.

대리만족!

가슴속 깊이 쏘아내린 감각의 화살촉!

고급한 피드백의 맛!

흔하지 않은 맞장구의 만남.  


'줄의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정순17 차라리 열꽃이라고 말할래요  (0) 2004.01.27
오정순16 머물고 싶어라  (0) 2004.01.27
오정순14 슬픈 아름다움  (0) 2004.01.27
오정순13 음덕  (0) 2004.01.27
오정순12 아름다운 세상  (0) 2004.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