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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금정산 호국 신라고찰 국청사 본문

풍경소리 (山寺)

금정산 호국 신라고찰 국청사

SHADHA 2013. 8. 14. 09:56

 

 

 

금정산 호국 신라고찰 국청사

7월 금정산 산책 3

 

 

 

국청사는 호국사찰로서 정확하게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국청사의 현판에는
<숙종 29년(1703년) 금정산성 중성을 쌓은 후 적을 막고 지키어
나라를 보호하니 그 이름을 국청사라 칭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703년 금정산성을 축조한 직후에 중창한 국청사와 해월사는 산성 승군작대의 승영으로 기능했던 곳이었다.
국청사는 임란 당시 산성을 지키는 승병장이 거주하였고
당시 승병장이 사용했던 <金井山城僧長印>이라는
철제인이 보존되어 있어 호국영령의 상징인 증거물로써 스님들의 구국 뜻을 말해주고 있다.
전략기지의 역할을 한 승군작대의 사령부가 있었다.

국청사의 건축물을 보면
대웅전에 있는 사찰의 뜰을 들어서기에 앞서 그 언덕아래에 있는 연못을 먼저 만난다.
200평가량의 연못 가운데 최근 세운 3층 석탑이 서있다.
또 연못 주위에는 몇 가지 석물들도 놓여 있어 눈길을 끈다.
그 옛날 둥근 연못 남쪽에는 약수 우물이 솟았는데,
위에는 더운 약수가, 밑에는 찬 약수가 나왔다는 영험한 우물이라,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는 전설이 지금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창봉선 백과 혜성 주지스님께서는 심혈을 기울여 1982년에 맑은 약수가 샘솟는 연못을 확장하고
한가운데 지장보사 보원 3층탑을 세워 자연석으로 연못을 아름답게 조경하였다.
3층탑 기단부에 4마리의 용은 보주를 희롱하고 기단 상층에는 12지 신상을 사방으로 배치하였으며,
탑 신부 1층 동서남북 사면에는 관음 지장보살이 좌정하고
탑 두부 상부에 8방으로 뻗은 가지 끝에 연꽃이 피어 있다.

국청사는 금정산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산성 마을의 역사를 증언해 주는
값진 문화유산이라고 할 만하다.


...자료글 편집...

 

 

2006년 3월에 국청사앞 도로변에다 차를 세우고 국청사에 온 적이 있었다.

법원앞에 있던 나의 소유였던 사무실이 경매로 넘어가고, 온천장 남의 건물에 사무실이 얹혀있어야 했던 시절,

온천장에서 산성고개를 넘어 국청사에 온 적이 있었다.

많은 생각과 고뇌가 있었던 때이기도 했다.

그때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지금, 그때보다는 훨씬 더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둘러 볼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나에게 너무 젊은 나이에 기회가 와서 그 기회를 아무런 경험이나 경륜없이

오직 젊음과 패기, 용기만으로 덤벼들다가 번번히 실패를 맛보았던 것 같다. 

지금 나에게 다시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 다시 실패하지는 않을텐데 하는 생각을

국청사 경내를 걸으며 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