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부산>황령산 아랫마을 본문

靑魚回鄕(부산)

<부산>황령산 아랫마을

SHADHA 2004. 1. 25. 10:59


가을 추억
2003






황령산 아랫마을

돌산마을에서







어쩌면 나는

어떤 거주자들의 오랜 추억들을 살해하는

저격수같다.


좁은 골목길과 낡은 처마

스레이트 지붕에 올려진 블럭들...

집앞 작은 공터에 공들여 만들어 놓은 채소밭.

오래된 외국영화 패널로 바람막이를 한 작은 구멍가게.

한켠에 방치된 채 녹이 쓸어가는 군고구마 만드는 통.

산동네 상징물처럼 집집마다 놓여진 푸른 간이 물탱크.

서둘러 아무렇게나 지어진 듯한 무허가 집들이라도

그 지붕들의 선에서

또 다른 조형의 선들이 조화를 이룬다.


어찌되었든,

내가 다가가 사진을 찍는 곳은

그 땅들, 집들, 골목들이 지니고 있던 추억들,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의

애닯거나, 슬프거나, 행복하거나 하는

그런 오랜 추억들이 곧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 땅에 새로운 추억을 심게 될

새로운 집들이 들어 서겠지만

어떤 사람들의 오랜 추억을 담고 있는 형상물들이

사라진다는 것이 아프다.


어쩌면 나는

어떤 거주자들의 오랜 추억들을 마지막으로 지켜보는

장의사같다.


그래서 나는

그 오랜 사연과 추억들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 형상들을 남기려 한다.


그 산등성이의 돌산 공원에서

시내를 내려다 보고

황령산에 걸린 푸른하늘을 올려다 보며 돌아설 때

쉬지 않고 날 따라 오는 형상이 있어 내려다 보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이중적인 잣대로 사는 나를 지켜보는

또 하나의 내가 거기에 있었다.


황령산 산 아래에서....














'靑魚回鄕(부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산>나의 또 다른 이름  (0) 2004.01.25
<부산>숲의 교향곡  (0) 2004.01.25
<부산>갈대밭의 추억  (0) 2004.01.25
<부산>껍데기만 부자인 사람  (0) 2004.01.25
<부산>산동네의 가을  (0) 2004.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