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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부산>아름다운 묘지 본문

靑魚回鄕(부산)

<부산>아름다운 묘지

SHADHA 2004. 1. 25. 19:39


건축가 김중업 선생의 작품이 있는 곳
2003






아름다운 묘지

유엔 묘지에서







....사람들이 죽음을 슬퍼하는 버릇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내 영혼은 義人들의 안식처로....갔습니다.
길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태어났지만,
불안정하고 모진 시대를 이겨내지 못한 내가 존재했던 시간은
그다지 많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자기를 기다리는 운명에 복종해야 할 것입니다.
왕도 또한 거기에서 제외될 수는 없습니다. .....
.... 불멸의 나의 영혼을 언제나 그리워하면서 ....

..... 장그르니에 < 그리스의 묘비명 >중에서 ....







오래전 절친한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따금 삶의 두려움을 느낄 때 묘지로 간다.
그 무덤사이에서 소주 한잔 마시고 누워 하늘을 보면
이 세상 그 어느 곳보다 편하고 두려움을 잊을 수 있어 좋다....

난 그처럼 삶이 두려워서 이 묘지를 찾아 온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비어버린 시간을 산책으로 채우기 위해서
갑자기 비어버린 마음을 생각으로 채우기 위해서
지나던 길목에 멈추었다.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들어선
그 묘지에서 나는 새삼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위안 받게 되었다.
묘비명에 적힌 국적과 이름
태어나고 그 생애를 마감한 날을 표시한 숫자들을 읽어 나갔다.

....1930~1952.

나의 삶도 그렇게 숫자로 정해져 있을 것이다.
무한정 사는 것이 분명 아니어서
주어진 시간만큼은 후회하지 않도록 제대로 살아야겠다....
그래서 지금 내게 주어진 고통마저도 즐겁게 받아들이고
가능한 그것을 행복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
뇌 속에다 넣어야겠다....
이렇게 산책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내는 것
그것 또한 내 삶을 지키는 방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고뇌에 가득 찬 삶 중에서.






문화회관과 시립 박물관에 인접하여 있는 유엔묘지.
난 오랫동안 그 앞길을 아침저녁으로 지나 다녔다.
그럼에도 시립박물관이나 문화회관은 몇 차례 가 본 적이 있으나,
유엔묘지는 단 한번도 들어 가 본적이 없다.
부산의 관광코스에 언제나 유엔 묘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고

....참, 어지간히 관광코스로 소개시킬 곳이 없는 모양이다....

라고 빈정거렸었는데
입구에 있는 고인이 되신 건축가 김중업 선생의 작품인 예배당과
잘 가꾸어진 산책길과 나무들,
연못과 자연스럽게 다듬어진 전경들이 긴 휴식을 갖는 영혼들을
행복하게 해 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참, 아름다운 묘지....아름다운 산책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