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중업 선생의 작품이 있는 곳 2003
아름다운 묘지
유엔 묘지에서
....사람들이 죽음을 슬퍼하는 버릇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내 영혼은 義人들의 안식처로....갔습니다. 길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태어났지만, 불안정하고 모진 시대를 이겨내지 못한 내가 존재했던 시간은 그다지 많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자기를 기다리는 운명에 복종해야 할 것입니다. 왕도 또한 거기에서 제외될 수는 없습니다. ..... .... 불멸의 나의 영혼을 언제나 그리워하면서 ....
..... 장그르니에 < 그리스의 묘비명 >중에서 ....
오래전 절친한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따금 삶의 두려움을 느낄 때 묘지로 간다. 그 무덤사이에서 소주 한잔 마시고 누워 하늘을 보면 이 세상 그 어느 곳보다 편하고 두려움을 잊을 수 있어 좋다....
난 그처럼 삶이 두려워서 이 묘지를 찾아 온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비어버린 시간을 산책으로 채우기 위해서 갑자기 비어버린 마음을 생각으로 채우기 위해서 지나던 길목에 멈추었다.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들어선 그 묘지에서 나는 새삼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위안 받게 되었다. 묘비명에 적힌 국적과 이름 태어나고 그 생애를 마감한 날을 표시한 숫자들을 읽어 나갔다.
....1930~1952.
나의 삶도 그렇게 숫자로 정해져 있을 것이다. 무한정 사는 것이 분명 아니어서 주어진 시간만큼은 후회하지 않도록 제대로 살아야겠다.... 그래서 지금 내게 주어진 고통마저도 즐겁게 받아들이고 가능한 그것을 행복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 뇌 속에다 넣어야겠다.... 이렇게 산책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내는 것 그것 또한 내 삶을 지키는 방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고뇌에 가득 찬 삶 중에서.
문화회관과 시립 박물관에 인접하여 있는 유엔묘지. 난 오랫동안 그 앞길을 아침저녁으로 지나 다녔다. 그럼에도 시립박물관이나 문화회관은 몇 차례 가 본 적이 있으나, 유엔묘지는 단 한번도 들어 가 본적이 없다. 부산의 관광코스에 언제나 유엔 묘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고
....참, 어지간히 관광코스로 소개시킬 곳이 없는 모양이다....
라고 빈정거렸었는데 입구에 있는 고인이 되신 건축가 김중업 선생의 작품인 예배당과 잘 가꾸어진 산책길과 나무들, 연못과 자연스럽게 다듬어진 전경들이 긴 휴식을 갖는 영혼들을 행복하게 해 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참, 아름다운 묘지....아름다운 산책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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