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R A C E
그 어떤 새벽에
08/24
새벽 세시가 넘었는데도 여전히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밤의 고요함에 취해 어느새 이 시간까지 왔군요.
모든 삶이 영화 같습니다.
잠자는 장면,
만나는 장면,
싸우는 장면,
우는 장면,
사랑하는 장면...
사람들은 장면마다 대사를 하겠지요.
절실한 대사를.
다음 장면을 위해 몸부림치는 대사를.
나는 과연 어떤 장면을 사랑하고 있을까요?
어느 장면에 머무르고 싶을까요?
문득 검은 바다가 보고 싶습니다.
검은 바다 수평선으로 날아가는 등대 불빛.
파도와 바람으로 가득찬 공간.
그 공간엔 나도 분해되어 녹아있는 것 같겠죠.
눈물이 또 나오려 합니다. 무언가 그리고 싶은데...
그래요. 밤은 이렇답니다.
온갖 옷을 입고 있는 낮과는 달리 밤엔 내 모습을 찾습니다.
드디어 나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안타까이 밝아오는 하늘을 붙잡지요.
당신. 당신은 어느곳에서 나를 보고 계신가요?
나는 볼 수 없는데...
때론 나무 뒤에 숨고 싶고,
때론 넓은 들판 한복판으로 뛰어나가 두 팔을 벌려
당신을 찾지요.
바람이 붑니다. 조용히. 그러나 시원하게
온통 바람이 붑니다.
내가 또 움직여 눈물을 닦는군요. 슬프냐구요?
아니요. 슬프지 않아요. 기쁨? 아니요.
그것도 아니예요.
왜 세상에는 기쁨과 슬픔. 두 단어만 있는걸까요?
난 어느것도 다 이해할 수 없는데...
그 의미를 확실하게 구분지을 수도 없는데...
나를 데려가세요.
내가 나이지 않게.
머무르지 않게.
절벽 끝에 서 있는 나를 봅니다.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안일한 일상이 나를 불안하게 합니다.
나른함이 영혼을 잠들게 합니다.
나와는 무관한 저 물건들.
세상에서 나의 소유는 없습니다. 소유?
종종 내 것이라고도 하고 싶지만, 곧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집착도 해 보지만 영원히 소유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순간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영원한 소유를 허락치 않습니다.
첫 닭이 우는군요.
아침을 만나기전에 서둘러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나로 가득찬 내 안을 당신을 위해 비워놓겠습니다.
나만을 위했던 삶을 내려놓겠습니다.
힘주었던 손도 놓겠습니다.
무얼 그리도 꽉 잡았는지...
당신이 떠나시기 전에 다 내려놓겠습니다.
주섬 주섬 꺼내어 놓겠습니다.
혼자서는 버거우니 좀 거들어 주시겠어요?
당신을 위해 잠시 눈물을 흘리겠습니다.
모르겠어요.
이 세상에서 쓰는 감정 표현의 언어들은 날 감동시키지 못하네요.
나 역시 섣불리 그 단어들을 사용할 수 없네요.
단어는. 언어는 감정을 제한시켜요.
그래서 시인들은 은유를 쓰나봐요.
나도 그림에서 감정을 제한시키고 싶지 않은데...
당신께 향한 마음을 그저 '감사해요'라고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네요.
가식적인 느낌이 들어 싫습니다.
그 아름다운 말을 진실되게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람부는 들판에 나가 하늘을 마주보며 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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