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샘
희망을 가지고 운명을 개척하는 자만이
07/25
희망을 가지고 운명을 개척하는 자만이
<비밀>
급행 열차 지나는, 쏜살같이 내닫는 숨가쁜 도중 추풍령 아래 푸른 행간에 하품하는, 문득문득 떠오르는 간이역
-문인수
시인이 왜 이 시의 제목을 <비밀>이라고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나라면 가장 표면적인 제목으로 <간이 역> 혹은 한층 내려가 <여름 방학> 뭐 이렇게 붙였을 것 같은데... 아마도 시인의 눈은 지하 몇 겁의 깊이까지 혹은 훌쩍 지난 과거까지도 투시하는가 봅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조바심 치며 가파르게 치닫던 기차가 7월을 지날 때면 숨가빠서 쉬게 되는 간이역 부근, 孟夏의 매미 소리 사나운 청도역 같은 곳에서 홀로 마시는 캔 커피 한잔의 여유, 건너 편 복숭아밭 원두막에서 중늙은이 하나가 하품하며 오수에 빠지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는 나그네의 심상에는 오직 부러운 휴식입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때로 육신을 혹사하고 달려온 길에 저 복숭아와 자두밭이 없었다면, 저 하품하는 중늙은이가 없었다면, 쿨한 커피 한 잔의 사유가 없었다면, 이제 도착할 세상은 지극히 허무하리라. 우리 삶의 텃밭이 되고 뒷산이 되는 자잘한 존재들에 일일이 따스한 시선으로 갈무리하지 않는다면, 우리 식량은 단지 석탄이나 기름이 되어야하고 우리 피부는 검게 칠한 메탈이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가치와 이미지를 쉼 없이 연마하고 확인하며, 그 결과를 각인하는 과정에서 성숙의 기쁨을 느끼나 봅니다. 죽음이라는 유한한 시간까지 주어진 모노톤의 밑그림 위에 현란한 색채를 덧칠하며, 때로는 독설과 광기의 야생마를 순치하는데 정성을 기울이며, 무슨 말 어떤 생각에도 거칠 것 없는 百花齊放의 상태를 은근히 흠모하면서 말입니다.
'00.7.25 더위 아래 구보하듯 책 속으로 걸어간 푸른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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