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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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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샘

푸른샘36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SHADHA 2004. 2. 1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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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샘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08/17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어제는 가족 휴가로 가까운 無僞寺에 갔습니다. 점심은 가는 도중에 羊탕으로 사먹었습니다. 위에 얹힌 야채 중의 어느 것에선지 향긋한 허브향이 나며, 걸쭉해서 영양 많을 것 같은 음식입니다. 차안에서 계속 중계되는 이산 50년만의 만남을 들었습니다. 눈을 감고 자는 척 했지만 참 많이 울었습니다.


무위사 입구에는 진달래빛 백일홍이 鮮姸히 만발해 있었습니다. 떨어진 꽃들이 작은 별사탕 같다고 애들이 말하더군요. 그 절은 절집의 배치가 좀 다릅니다. 대웅전에 해당하는 극락도장의 바로 맞은 편에 정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수령이 사 오 백년은 넘었다는 팽나무와 느티나무도 정지의 좌우에서 그늘을 주며 侍立해 있습니다. 항상 부엌이 생동하는 느낌... 그래서 무위사에 다녀오면 꼭 절밥이라도 얻어먹고 온 듯 배가 부릅니다.


사람이 서로 헤어져 오십 년쯤 지나면 어떻게 변할까요? 육체는 삭고삭아 의미가 없어지고, 정신도 영혼도 아득히 늙어버리겠지요. 추억은 빛 바래고, 애틋한 설레임도 딱딱하게 굳은 손가락과 질긴 피부처럼 둔감해지겠지요. 그런데도 무엇으로 만나고 싶은 걸까요? 아마도 후회, 어쩌면 아쉬움, 아니면 단지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확인이겠지요.


열 개의 질문에, 아니 열 한 번째의 질문에도 O표  할 수 없는 나는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항상 가까운 뒷산에나 오르며 생각의 안쪽도 초라하기 짝이 없이, 그래서 마음은 뇌와 심장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한 오 십년 기다리기로 작정했습니다. 늙지 않고 죽지 않으면 만나게되는 만남까지 난 또 바보처럼 살겠지요.


'00.8.17
꿈과 미련을 위스키 잔에 붓고, 푸른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