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샘
여름일기-나무와 나무들의 오후
08/26
나무와 나무들의 오후는
목수 김씨의 일 하는 품새를 보면 어쩔 수 없이 몸살이 나거나 어깨에 담이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첫해 밭을 매던 때처럼 어찌나 일을 깔끔히 해두려고 하는지, 그래도 세월이 지나면 좀 요령이나 순서를 달리하겠지요. 그는 방문객들이 산으로 산책하러 가자고 해놓고는 별 쓸모없는 나무도 굳이 가져가자고 보채는 것을 아마도 사람마다 가진 <노동에 대한 충동>이 그런 것 같다고 이해합니다.
누구나 일하고싶어 하는 경우가 있지요. 그것이 어떤 보람있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 때는 특히... 그러나 그가 나무를 챙겨다가 창고에 보관하는 방법을 보면 아무래도 좀 염려가 됩니다. 나무는 서서히 썩어 가는 유기물의 생명체이므로 어떤 식으로든 그 유기질의 보존 처리가 필요합니다.
옛 사람들이 목재를 바닷물에 담그고 절여서 강하고 단단하게 하는 것이 한 방법이었지요. 나아가서는 이곳 남쪽에는 매향의식이라 해서 참귀목류 나무를 육수와 해수가 만나는 곳에 묻어두었다가 그 나무향이 깊이 베이면 수백 년 후세 사람들이 파서 향으로 쓸 수 있게 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차를 마시기 전에는 먼저 침향에 손을 씻는 끽다법이 전해져 오는데 바로 이 매향에 근거하고 있다합니다.
그가 자주 나무의 목질에 실망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은 어쩌면 그런 사전처리법을 무시하는 예술가 나름의 순수에 대한 고집 때문인 듯 합니다. 그러니 나로선 그의 글을 읽으며 솔직히 그의 작품을 사기는 그렇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얼마 안 가서 벌어지거나 썩어버리는 나무 의자를 이, 삼백 만원의 고가에 산다는 것은 내게 이미 굳어버린 합리적, 실용주의적 사고가 허락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기에 때로 글이나 작품으로 가까이 느끼던 사람을 실제로 만나고 보면 의외의 거리를 갖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산 속을 달리며 만나는 수천, 수 억 그루의 나무들... 어쩌면 지천으로 흔한 재료를 두고 굳이 사연과 이유가 있는 나무를 찾아내서 나무의 생김에 어울리는 작품을 만드는 그의 장인 정신도 좀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인 것 같고요. 또 그것을 사는 사람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평가도 어쩌면 상당히 허구적인 것이 되고 말지요.
전시회에서 보았던 그 작품성이 실용이라는 면에서는 작가 자신도 난처해하는 것이라는 걸 책을 통해 읽으며 더욱 진하게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진솔하기 그지없는 그의 본성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고백이라 보여집니다. 아무튼 김씨의 작품은 아름답고 우아하고 특이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문화적 안목이 없는 범인으로선 구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기에 나는 인터넷의 친구를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는 것도 하나의 대질 심문만 같아서 망설여집니다. 백중 대부분이 실망하거나 실망 당하지 않을까요? 서로의 외모나 말의 억양, 혹은 사물에 대한 순간의 판단같은 것이 엄연히 다른 두 사람이 사이버의 공간에서 잠시 나눈 이야기로 공감했다고 해서 이미지의 일치를 만들 수 있을까요? 환상의 장막을 거두기 위한 목적이라면 일찍 만날수록 좋겠지만.
그러나 아직 그의 책을 사분의 일, 즉 첫 장인 '나무와 나무'만 읽었을 때의 기우인 듯 합니다. 책의 후반부 '목수 생각'을 슬쩍 넘겨다보면 그도 이미 그런 저런 정보와 지식이 얼마나 많고 필요한 것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영리한 목수이며 글을 쓰는 일은 조금은 우회의 방법이지만 지식의 단계를 밟아 가는 확실한 수순이 되기도 하므로 곧 작업의 변화와 개혁을 찾아내겠지요.
차는 어느 덧 진외갓집 동네 어귀로 들어섭니다. 가사문학의 보존지역인 동네, 식영정이나 소쇄원을 그냥 지나치지만 차창 밖으로 흐르는 공기에서도 그 특유의 향기를 족히 느낄 수 있습니다. 외가 동네는 굴다리 지나서 마켓과 약국 그리고 식육점과 미용실 지나면 코너에 경찰서, 원예사, 그리고 외숙이 잘 다니시던 경노당이 있습니다. 농협 앞의 공터에 차를 세우고 먼저 논에 세운 비닐 하우스로 가봅니다. 아마 쉬는 날 없이 일하고 있겠지요. 역시나 가을 무우씨를 뿌리고 있던 동서가 달려오며 어서 집으로 가자합니다.
'01.8.26
나무를 보기보다 숲을 보며 푸른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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