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샘
뉴욕, 누구에게나 이야깃거리가 있는 도시.
09/13
뉴욕, 누구에게나 이야깃거리가 있는 도시.
오래 전 잠시 들렸던 미국의 동부 도시 중에서 내게 가장 많은 감정의 질곡을 주는 곳이 뉴욕입니다. 밤늦게 도착한 보스톤의 로건 국제공항에서 느끼던 소름끼치는 두려움과 낯설음이 해가 뜨자 사라지는 안개처럼 녹아버리고, 진지함과 고풍스러움이 청춘의 열기로 인해 적당히 스피디하게도 느껴지던 도시는 휘감고 흐르는 찰스강변 따라 아름다웠습니다. 나중에 찾아간 워싱턴 역시 지적인 흑인들의 날씬한 몸매가 더욱 감탄스러웠고, 여름밤조차도 서늘하고 아득한 향기를 풍기는 꽃들과 가로등이 밝아서 행정의 중심지다운 명쾌함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뉴욕에 도착한 후의 첫 밤부터 우리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소속의 끈을 놓쳐버린 듯한 허전함 속에 어슬렁거리듯 걸었습니다. 물론 일행 중에 공동경비관리를 책임지기로 한 사람이 그 돈을 몽땅 유용해버리고 만만하게도 나의 신용카드로 나머지 여행을 진행하자고 할 때의 어이없음에서 연유된 것이지요. 나는 애초의 계획에는 없었지만 뉴욕에 사는 사촌 이모님에게 연락을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힐튼호텔에서의 수백 달러나 되는 숙박비를 지불하고 그런 식의 여행을 지속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사촌 이모님은 처녀 적에 단신으로 뉴욕에 밀항하였답니다. 아마 육십 년대의 초이니까 손 위 언니가 간호사 자격으로 독일로 떠난 직후쯤인 듯 했습니다. 솔직히 그 당시 초등 학생정도였던 내 기억에는 그 분들의 이름이나 얼굴의 흔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옛적에 우리 집에 기거했었다는 일종의 부채의무가 이모님을 황급히 쫓아 나오게 하고 우리 일행을 손님으로 맞게 하였습니다. 이모님이 타고 나온 벤에 실려 간 곳은 그랜드 센트랄역 근처에 있는 식료품과 점심 식사를 파는 가게였습니다. 영어라곤 한마디도 모르고 맨손으로 미국에 건너와 살며 이만한 가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조금은 성공한 것 같았습니다.
이모님은 맥시칸과 동양계 알바이트 학생들을 고용하여 델리 가게를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가게에서 점심으로 파는 음식이 남으면 우리 일행에게 무상으로 실컷 먹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모님은 김치며 나물류를 따로 준비하여 입에 맞게 주시고 정말 정성껏 보살펴주셨습니다. 여행의 경비까지도 삼천 달러나 빌려주겠다고 해서 극구 사양하였지요. 경비 책임자의 카드에 돈이 송금되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만 뉴욕에 머무르고 계속 워싱턴과 올랜도를 돌아서 하와이까지의 스캐줄을 강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모님은 뜻밖에도 문선명의 통일교 교회에 다니고 있더군요. 가게와 같은 블록에 있는 뉴욕커 빌딩에 그들의 본부가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그 빌딩의 객실에 이모님의 주선으로 하루에 이십 달러 내는 방을 얻어 지내게 되었지요. 나만이 이모님이 혼자 지내는 가게 내실에서 함께 지내고요. 낮에는 수많은 미술관으로, 차이나타운으로, 허드슨강을 따라 일주하는 써클라인과 센트랄 파크로 뛰다니며 놀던 아들은 가게에 와서 저녁을 먹으면 바로 그곳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나 그 짧은 거리를 달리며 느끼는 공포는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입니다. 그런데도 개구쟁이인 아들은 43층의 창문을 열고 소변을 보며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얼마 후에 들리나 듣고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나 역시 몹시 곤한 탓에 아들을 데려다 주고 돌아서 단거리 달리기를 하고 오면 바로 잠에 빠집니다. 그런데 어렴풋한 잠결에 들리는 전화 대화 소리... 이모님은 한국의 누군가와 밤마다 길고 긴 통화를 하나봅니다. 얼마 후에 한국에 들어가면 라이방을 사다 주겠다나요? (지금 한국에는 더 좋은 게 많은데...) 상대편 남자는 괜찮다고 하나 봅니다. 그럼? 계속되는 통화 속에 나는 잠에 떨어집니다. 나중에 들었습니다. 미국으로 떠나 온 이유가 되었던 바로 그 남자가 지금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로선 감히 결단하지 못했던 미국행을 단지 실연을 이유로 감행한 그 옛날의 이모가 몹시도 가여워졌습니다.
또 어느 날 밤 아주 늦게 들어온 이모님은 교회에서 예배 후 댄스 파티가 있었다 합니다. 진한 고독의 그림자 속에 술 냄새가 좀 났습니다. 나는 또 잠 속으로 피했습니다. '난 죽어도 이민은 안 할 꺼야...'를 깊이 다지며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뉴욕에는 나와 함께 오래 청춘의 고뇌를 앓았던 사람이 셋이나 스며들어와 있었습니다. 대학 시절 유일하게 같은 과 여학생이며 나의 보호자격이였던 K, 군 장성인 아버지 따라 온 가족이 이민했지요. 일찍 전산학을 공부했는데 그 후로 연락은 안됐지만 아마 전문직에 있으며 잘 지내겠지요. 또 대학원 선배로서 유학 갔다가 너무나 외로워서 흑인과 결혼해버렸다는 소문만을 남기고 잠적해버린 L언니, 또 졸업 후 연구실 생활을 오 년이나 함께 한 친구 J가 종양학을 공부해서 뉴저지의 제약회사 책임 연구원으로 있었습니다.
마침 J와 연락이 닿아서 만났을 때 우린 서로 놀랐습니다. 십 여 년이 지났는데도 너무나 똑같은 서로의 모습이 마치 자신의 과거가 살아온 듯하다면서요. 그녀는 유명 한국 갈비집으로 데리고 가서 깍두기에 불갈비를 실컷 먹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나에게는 익숙지 않은 카드 결제를 해서 마음 아프게 했지요. 집도 빌린 것이고 차도 엄청 고물차를 타고 다니며 결혼도 않고 돈도 못 모았다고 해서요. 우리 나라에선 최고의 학벌과 문벌을 가진 딸이었는데... 연구 테마 때문에 스트레스 엄청 받는다고 하던 그 친구를 한국으로 불러오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도 가슴 아픕니다.
그리고 또 하나 대학 시절의 내 유일한 보이프랜드였던 그가 맨하탄의 35가에 살고 있습니다. 조숙하게도 연상의 여인과 방황하던 그가 뜻밖에 목사의 딸과 결혼한 후, 괌에서 한 몫 벌고 뉴욕에서 빌딩 임대업을 하고있다 합니다. 나는 푸하하 하고 웃었지만 사실 임대업이 가장 사기성이 적고 안전한 사업이란 것도 잘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원래의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만 같아 이따금 귀국하여 김포공항이라고 걸려오는 전화에 바쁘다고 잘라버리는 무정한 과거지사가 되었습니다.
암튼 이런 일들에 대한 상념들이 예사롭게 뉴욕을 바라볼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비디오로 보려던 영화<아이즈 와이드 셧>은 작은애의 검열에 걸려서 못 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나 자신도 뉴욕의 거리나 모습 그리고 그 안에 떠도는 인종들의 얼굴을 보는 게 두렵습니다. 나는 오래 전 이국 땅에 대한 동경의 꿈을 접게 한 소설 한편을 떠올리고 나의 다락방에 올랐습니다. 1977년도 콩쿠르 수상작인 디디에르 데코엥의 <마천루의 창을 닦아라.>는 나중에 단행본으로 나왔겠지만 당시의 문학사상지 1978년도 1, 2월 호에 나뉘어 신경자 번역으로 실려 있었습니다. 먼지가 푸석하게 베어들고 활자는 개미 반만한 누런 책을 주말여행 중에 대략 읽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일명 <존 랑페르>입니다. 그는 샤이언족의 인디언이며 마천루의 유리창 닦기로 직업을 삼은 사람입니다. 그가 어느 날 작업 중에 남자 화장실에 들어와 헤매는 도로시 케인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시력을 손상해서 안대와 습포를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녀는 존이 샤이언족이라는 걸 보았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정중한 인사를 한 후에 자기를 소개합니다.
<난 도로시 케인이라 불러요. 하바드와 뉴욕대학에서 도시사회학을 전공했죠. 피터 미뉴에 관해 박사 논문을 썼었어요. 그가 단돈 이십 사 달러를 주고서 인디언에게서 맨하탄 섬을 산 건 다 아시지요. 절대로 그가 헐값에 맨하탄 섬을 산 것은 아닙니다. 우선 1626년의 이십 사 달러는 절대로 적은 액수의 돈이 아니었어요. 그가 맨하탄을 매입한 이년 후에도 그곳은 이 백 오십 명 정도의 인구밖에 거주하지 않는 촌구석이었는걸요.> <나는 존 랑페르 라고 해요. 밀루 회사에서 유리창 닦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정의 내리기 위해서는 우선 그의 눈부터 보라고 한 것이 역시 옳은 말이군요. 손금 따위를 믿는 건 어처구니없구요. 그렇지 않아요? 그것이 인간의 운명 따위를 어떻게 점 쳐줄 수 있어요?> <나에겐 너무 복잡한 이야기인 걸요.>
그녀는 낚시대회에 참가하였다가 파도에 휩쓸려 널빤지에 얼굴을 맞고 두 눈을 실명하게 된 것이지요. 존은 이따금 <이 거대한 유리창, 그것은 정말로 닦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일까?>라고 회의하면서도 원시의 뿌리깊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으로 높은 곳에서도 현기증을 느끼지 않고 일에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내버려진 방들의 벽에는 먼지더미가 마치 회색빛 눈처럼 소복히 쌓여 있다. 먼지 특유의 어스름한 빛을 띠우고 있긴 했지만, 또한 솜같이 부드럽고 따스하기도 하여서 금방 뺨이라도 갖다대고 싶은 충동을 주기도 한다.> 라고 빈방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립니다.
그는 도로시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공하지만 존에게 여자란 저 높은 빌딩 꼭대기에서 유리창을 닦고 있을 때 유리창 안에 그냥 비추인 채로 머물러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사랑이 필요했고, 어이없게도 폴란드인 장교 출신인 백인 남자 미샤에게 매번 강간당하며 지내고 있어 존을 비탄에 빠지게 합니다. 존은 빌딩의 꼭대기에서 뱀을 만나 화해하기도 하고 침식되어 벌어진 건물의 붕괴 위험을 당국에 알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득이 하게도 마약 중독자에게 공기 주사를 주어서 죽도록 도와주고 체포됩니다. 그는 드디어 거대한 부패의 도시를 떠나기로 작정합니다.
<밤이 깊었군. 도로시 날 따라 갈 수 있겠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 가끔 눈이 거꾸로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고, 내리는 비가 붉은 색으로 보일 수도 있는 그곳에 <자유의 불>이라는 이름의 등대가 켜졌다. 뉴욕주의 경계선을 영원히 넘어서는 순간, 존 랑페르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이제 그는 그 도시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
소설은 뉴욕이라는 현대성과 인디언종이라는 원시성의 싸움이, 표면적으로는 원주민이면서도 심층적으로는 소외되어 살아가는 인디언의 삶과 눈을 통해서 해부되며, 그래서 소설은 현대문명이 당할 미래의 투영도, 죽음을 노래하는 장송곡과 지옥도를 보여줍니다. 허위의 창, 탐욕의 창, 증오의 창, 뉴욕의 마천루처럼 너무 높이 솟아서 손으로는 닦을 수 없는 창, 그러나 존 랑페르는 원시적인 정열과 사랑으로서 이 문명의 창을 닦아내기 위해 모험을 했고, 그 많은 외로움과 박해 속에서 먼지를 씻었습니다. 그리고 옛날 옛적의 초원을 봅니다.
뉴욕은 그래서 너무나 산문적인 도시이며, 수천 수만 가지의 이야기 거리들이 있는 도시입니다. 아마도 내가 알기에 숱한 리얼리즘 속에 깊은 상징성이 담겨있는 도시는 뉴욕뿐인 것 같습니다. 뉴욕은 여러 가지 형태의 현대문명을 상징하며, 세계의 모든 인종이 살고 있고, 최첨단을 걷고 있으며, 미국이라는 한 나라의 도시이면서 동시에 모든 현대인의 운명을 담고 있어서, 현대 역사 속에 살아가는 미래의 거울이기도 한 도시입니다. 그러기에 선뜻 말할 수 없는 높고 큰 산과 같은 도시입니다.
'01.5.9
코끼리 다리를 더듬으며 푸른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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