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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푸른샘105 여름일기-뭉게구름은 계란 거품처럼 피는 오후 본문

깊고 푸른 샘

푸른샘105 여름일기-뭉게구름은 계란 거품처럼 피는 오후

SHADHA 2004. 2. 14. 12:08


푸른샘




여름일기-뭉게구름은 계란 거품처럼 피는 오후

08/25








뭉게구름은 계란 거품처럼 피는 오후에


와이자 형태로 갈라진 곳에 이르러서 깜박 들어선 길이 송강로, 원효사 가는 길입니다. 언제나 왼쪽 조금 아래로 향한 길을 택했는데 오늘은 조금 치솟은 오른쪽 길로 잘못 들어서고 보니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원효사 절 구경을 하기로 합니다. 벼랑같은 절벽을 끼고 가며 보니 우측 암벽에 오래된 글씨들이 여럿 새겨져 있습니다. 옛 사람들은 그렇게 바위에 싯귀를 새겨 남기기를 즐겼나 봅니다. 길가로 늘비한 연둣빛 청단풍과 붉은 은단풍 나무들이 섞여서 낮은 그늘을 이룹니다.


산장 주차장에 이르러 음료수를 사 마시며 이것저것 묻다가 오늘은 바로 원효사 앞마당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날이라기에 차를 가지고 올라갔는데 느리게 걷거나 쉬는 사람들이 많아서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마침 <백중 조상 영가, 낙태아 천도 기도> 불사가 있더군요. 영가가 무엇인지, 천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아무튼 기도의 제목이려니 하였습니다.


원효사 주변은 가족들과 산책 삼아 나온 사람들로 벅적였습니다. 작은 애들은 마치 할아버지 댁에 놀러 온 아이들 모양 좁은 절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즐거워했고 또 부모들도 편안하게 그늘이나 누각에 올라서 쉬고 있었습니다. 절 마당이 얼마나 작고 오붓한지 한켠에 있는 우물과 하얀 꽃 피운 배롱나무 한 그루뿐이었습니다.


절 입구는 그 무시무시한 사천왕상 같은 것은 없고 대문 위로 누각을 얹었는데  내 팔로 한 아름씩인 기둥이 가로 6개, 세로 3개 세워지고 바닥의 마룻장은 널판만큼 넓은 것들로 촘촟히 깔려있습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 보니 손 뻗으면 닿을 듯 무등산의 主峰이 한 눈에 다 보이는 것이 바로 이 자리가 무등산 도립 공원의 중심 축이라는 설이 맞나 봅니다.


가까이 두고도 난생 처음 올라보는 이 절집은 617년 원효 대사가 창건한 후 무수한 외난에  불 탓다가 1980년에 중건했다 합니다. 그러나 절로 오르는 숲길이나 칠 안한 모양은 오래된 절집의 고풍을 그대로 살리고 있어서 한없이 편안한 곳이었습니다. 중건 당시 통일신라시대부터의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는데 모두 광주 박물관에 전시되고 발굴된 많은 소조불상편을 보아 이곳도 천불전이 있던 곳이라 확인되고 있습니다.


조촐한 대웅전의 뒤란으로 돌아 가보니 커다란 소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서로 어깨를 맞댄 그늘 아래 선태류 푸른 식물들이 카펫처럼 예쁘게 깔려 있습니다. 작고 여린 대나무들이 가장 자리에 돋아나서 조선식 정원같은 절 마당의 뒤란이 얼마나 아담하고 고적한가를 보여줍니다.


다시 산장까지 내려와서 잘 조림된 단풍나무 정원과 숲을 관상하며 가을에 다시 오면 아마 이처럼 쉬이 떠나지는 못하리란 예감이 들었습니다. 늦재까지 오르는 산책길이나 충장사까지 오르기를 남겨두고 산을 내려서니 분청사기 도요지나 가사문학권 입구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의 다슬기 해장국은 아마 속리산에서 본 올갱이 해장국이겠지요. 늦게 출하되는 무등산 수박(푸랭이)나 고랭지 포도를 판매한다는 원두막들이 즐비합니다.


목백일홍 무성한 곳에 달맞이 꽃, 하얀 박꽃이 어울려 피어있습니다. 귀목나무집, 산따라 물따라, 산 아래 호수, 광화문 연가 등 음식점의 이름도 운치가 넘칩니다. 광주호 건너는 다리 전에 원두막에서 파는 첫물 포도는 맛이 일품입니다. 나무를 심은 첫해의 수확은 알이 굵고 신맛이 거의 없어서 배가 불러도 모르고 한 관씩 먹고 간다합니다. 은어 낚시를 한다고 호숫가에 나가 앉아있는 이들의 비치 파라솔이 화려하기만 합니다.


      '01.8.25

     소박미 넘치는 절집을 보고 푸른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