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푸른샘119 어떤 퍼포먼스 본문

깊고 푸른 샘

푸른샘119 어떤 퍼포먼스

SHADHA 2004. 2. 14. 12:34
728x90


푸른샘




어떤 퍼포먼스

02/04








이곳 바닷가에 면한 예술회관 주변은 미관광장이라고 불린다.
넓은 원형의 공원도 있고 잔디나 원두막, 벤치까지 골고루 갖추어진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사람들은 파도가 찰싹거리는 일주도로의 블록 노견에 걸터앉아서
먹물처럼 검고 깊은 밤바다를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날마다 질리도록 보는 바다이지만, 어두워지면 더욱 서늘한 해풍이 불어서 시원한 탓이다.

미관광장에는 폭죽을 파는 알바이트 학생들도 많다.
로켓형, 연발형, 사각형, 장통형 폭죽들은 아마 중국제인지 싸기도 하다.
아직 나는 용기가 없어서 못해보았지만 불꽃놀이하는 사람이 참 부럽다
보통 연인들은 무언가를 축하하기 위해 폭죽을 사고 백사장으로 내려가 터트린다.

모래밭에 몸체를 고정시키고 성냥으로 도화선에 불을 댕기면
도화선은 불꽃을 일으키며 긴장한 듯 주춤주춤 타들어 가다가
원통의 중앙에 닿으면 아찔한 순간 갑자기 붉은 불덩이로 솟구쳐 오른다.
허공 중에서 몇 갈래 불길을 내며 폭발하는 순간의 황홀함.
그러나 탄성과 환호성 속에 정점에 다달은 불꽃은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한다.
침묵처럼 어두운 바다에 빠진 잔해는 이윽고 피지직 소리를 내며 소멸한다.

도화선이 타들어 갈 때의 그 스물스물한 느낌이나
화통에 닿아서 터져 나가는 폭발은 욕망이 파열하는 소리같다.
어둠 속에 잔 불꽃이 우산처럼 좌악 펼쳐지다가 이내 가뭇없이 스러지는 불똥들.
떨어지는 파괴의 미진한 욕구 속에 사람들의 마음은 아쉬움의 한숨 소리를 내뱉는다.

아마 그 안에는 우리의 어두운 욕망, 파괴의 충동, 긴장된 열정,
그 모두의 혼합된 재료가 뒤섞여 파열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때문이다.
그래서 불꽃놀이는 우리 대신 표현되는 어떤 감각, 혹은 어떤 표현
어쩌면 내면 깊숙이 숨겨진 어떤 정체의 퍼포먼스이다.


'02.02.04

입춘에 푸른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