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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푸른샘141 러브레타의 오타루를 기억하며 본문

깊고 푸른 샘

푸른샘141 러브레타의 오타루를 기억하며

SHADHA 2004. 2. 1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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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샘




<러브레타의 오타루를 기억하며 >

08/25








 


<러브레타의 오타루를 기억하며 >


저녁이면 밧테리 떨어진 모터처럼 털털거리다가도 새벽이면 또 충전되어서 벌떡 일어난다. 어제도 얼마나 걸었는지 발바닥도 얼얼하고 새끼발가락 사이엔 물집이 생겼다. 그래도 뜨겁고 센 물줄기로 씻고 깨끗한 이불에 누워서 숙면을 취하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새 기분이 든다. 일찍 짐을 꾸려서 식당 앞에 내려가 아침을 기다리며 다시 한번 로비의 샤갈 진품과 미티스, 유트릴로 풍의 풍경화와 나부화를 감상한다. 일본화가인 靑山씨의 작품은 이층 계단 오르는 곳과 처처에 많이 전시되어 있다. 화장실까지도 그림이 걸리고, 넓고 깨끗하고 산뜻한 향이 난다는 것이 몹시 부러웠다.


날마다 비슷한 식단이지만 오늘은 청국장을 요플레 컵만한 것에 담은 '納豆'를 간장과 겨자에 비벼서 먹어보았다. 먹어두면 영양가는 있겠지만 맛은 별로다. 해초무침과 손가락만 한 통째로의 가지나물, 시지 않은 우메보시를 흰죽과 함께 먹었다. 오늘은 찬물에 담긴 냉매까지도 나와서 요플레처럼 부드러운 생두부에 대한 미련이 없도록 잔뜩 먹어두었다. 일본인의 장수 비결이 음식 속에서 깨우쳐진다. 발효식품과 콩 요리를 항상 상식하는 것, 자극성의 음식은 전혀 없고 소식으로 충분히 소화를 잘 시키는 것, 위생적인 처리 등이다.


공항 버스를 타는 곳에도 출근하는 이들이 급히 와서 고가 도로 아래 공간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달아난다. 퇴근할 무렵 돌아갈 때면 수백 대의 자전거 중에서 자기 것을 잘 찾나 모르겠다. 은빛 바퀴 살이 아침 햇살에 반짝거린다. 바구니에 담긴 우산과 땀수건이 주인의 체취를 뿌리며 마르고 있다.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만난 우리나라 여학생 두 명, 동경에 가서 4일간 더 머물다 돌아간단다. 보딩 패스를 끊으며 보니 일어는 하나도 못하면서 빽빽이 적어온 수첩을 보고 일 처리를 한다. 정말 대단한 용기이다. 일본만의 안전한 치안이 그런 여행을 가능하게 한지도 모르겠다.


짐을 보내고 이층의 전송대에서 활주로를 구경한다. 매점에는 北海島만의 음식과 풍속을 담은 소책자가 가득하다. 가볍게 볼 문고판의 책들과 만화도 많다. 비행기 내에선 금연이기에 후드 장치가 되어있는 'Smocking area'에 둥글게 모여 서서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 우물가에 모여 잡담을 나누듯 남녀의 구분이 없다. 뻣뻣하게 마주서서 연기를 불어댄다. 급유차가 다가와서 비행기에 주유를 한다. 짐을 나르는 차들도 오고 간다. 수 백 명을 태운 비대한 비행기는 은빛 날개 저쪽 끝의 표시등이 까마득히 보이지 않을 만큼 크다.


드디어 이륙, 날씨는 쾌청하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유리알같은 하늘로 정지한 듯 유유히 떠간다. 연안에 엎드린 섬 위로는 증발된 수증기인지 자잘한 애기 구름만 떠있다. 수많은 섬들의 나라, 내 사는 동네도 이천여개의 섬이 있지만 나는 그들 중에서도 우리나라 함경북도 중강진만큼 추운 곳에 있는 북해도,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유리처럼 반짝이는 도시, 그리고 그 도시를 알게 한 한 여인을 만날 것 같은 기대에 몹시 설레였다. 그리고 그녀의 글을 뒤적이며 아직도 그녀가 그립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일본 여행의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던 눈과 야생화의 나라 삿보로, 그리고 오타루를 향해서 부픈 가슴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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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호> 러브레터의 오타루를 기억하며  2000년 03월 22일  

                - 컬럼 '아줌마의 영화 이야기'에서 옮김


저는 오늘 일본영화 '러브 레터'의 촬영지이자 조성모의 가시나무새 뮤직 비디오 촬영지였던 일본 홋카이도의 오타루라는 작은 도시에 대해 몇 자 적어 보겠습니다. 제가 '러브레터'를 본 건 작년 12월이던가요, 역시 같은 일본 영화 '링' 시사회를 끝내고 러브레터 마지막회를 보았습니다.


'링'을 본 후의 그 공포감을 조금이나마 떨쳐 버리고 싶었던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이와이 슈운지’라는 그 스타 감독의 영상을 고즈넉하게 감상해보고 싶었습니다. 흰눈에 쓰러지는 여주인공 나카야마 미호의 해맑은 얼굴이 우선 제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내게도 저런 때가 있었지(조금은 나이든 이들만의 자괴심을 특권(?)으로  둔갑시킬 수밖에 없는 저의 현실이 서글픕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베로부터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 오타루(小樽)'라는 자막이 나오더군요. 그래요. 오타루라는 단어를 본 순간 마치 여주인공이 자신의  첫사랑이 중학교 시절을 보냈던 오타루를 찾아가듯 갑자기 저도 잊고 지냈던 9년 전의 제 모습으로 플래쉬백 되었다고나 할까요?


제가 오타루를 갔던 건  한 9년 전이었습니다. 그때는 제 나이도  꽤 팔팔했던 때였죠. 취재차 갔었는데 저 역시 그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그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일본 홋카이도의 우리말로 하자면 도청 소재지 삿포로시에서 JR선 기차를 타고 한 2시간 정도 달려 도착했던 곳이었죠. 홋카이도는 북쪽에 위치한 관계로 제가 갔던 때가 5월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날씨가 쌀쌀하고 눈발이 날리더군요. 기온이 낮아서 그런지 거리는 아주 썰렁할 만큼 깨끗했던 게 인상이 남습니다. 아! 또 인상이 남는 게 하나 있네요. 이 오타루라는 곳이 조총련 세력이 강한 곳이라 재일교포 여학생들이 하얀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입고 조총련계 학교를 다닌다는 걸 알았습니다. 제가 오타루 시내에서 이 한복 차림으로 등하교를 하는 학생들을 직접 보았었죠.


왜 이렇게 남의 나라, 그것도 일본의 어느 조그만 항구 도시에 대해서 호들갑이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을 줄 압니다. 그것도 9년 전에 며칠 잠깐 들렀던 그런 작은 도시를 말이죠. 영화 '러브 레터'의 영향이라고 말하시겠죠. 물론 영화를 보고  나서 옛날 생각에 잠겼던 것도 물론입니다만 그것보다 저는 시간이 갈수록 이 오타루라는 도시가 참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피상적으로 알기에는 그런 거였거든요. ‘야후 재팬’에서 찾아보아도 알  수 있듯 홋카이도의 작은 항구 도시로 메이지 시대부터 오타루가 위치한 이시카리만의 석탄을  캐내 도쿄로 이송하기 위하여 부두가 발달하였고 사할린 등의 연해주와 인접한 지리적 여건상 러시아와의 교류가 활발하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또 김일성 생존시에는 이 항구도시에서 김일성의 생일 잔치 때 쓰기 위하여 많은 물건들을 싣고 북한으로 떠나는 배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러브레터'에서도 잠깐 배경으로 나왔었지만 유리공예가 무척 발달한 곳이라 유리  공예 박물관과 기타 다른 공예  박물관이 많이 있는 곳이죠. 저도 이 영화에 등장했던 유리 공예  박물관에 가서 유리에 달라붙어 그 아줌마 아저씨들이 입으로 불어  만들어내는 기기묘묘한 여러 가지  고양이며 사슴, 강아지 등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던 기억이 새롭네요.


뭐 이런 피상적인 거였지만 제가 정말 이 도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읽어보신 분들도  많겠지만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읽고 나서입니다. 기억나세요. 주인공 쇼다의 고향이 바로 오타루였다는 거? 아버지가 애써 일궜던 초밥집이 거대 프랜차이즈 초밥 체인의 음모에 넘어가 문을 닫게 되자 쇼다가 일류 초밥 기술자가 되기 위하여 병든 아버지와 가슴에 품었던 연인, 미도리를 두고 떠나온 고향 말이죠. 그 고향이었단 말이죠. 정말 의리있고 잘 생기고 그것도 모자라 세세한 마음씀씀이까지 꼭 제 이상형(?)이었던 바로 쇼다의 고향이 오타루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는 일본인의 정서에서 오타루라는 곳은 어떤 곳일까  참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제가 또 『여제(이건 19세 미만 구독 불가입니다)』라는 일본만화를 읽다보니까 비록 여주인공은 아니었지만 꽤 비중 있는 조연, 호스티스의 고향이 또 오타루가 아니겠어요? 그래서 그때 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죠. 오타루라는 곳이 우리나라로 치면 온갖 역경을 딛고 일어나 마침내 인간 승리를 일구어낸 그 어느 고장(?) 같은 일본의 그런 곳은 아닐까 하고 말이죠.


그래요. 제가 이렇게 오늘 장황하게 일본의 어느 작은  항구 도시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던 건 아주 단순하게 제가 가보았던 그곳을 영화와 만화의 한 배경으로 만나보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한다는 건 어차피 피상적일 수밖에 없죠.


하지만 새로운 문화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한없이 제가 참 모자라고 제 지식과 안목이 깊지 않고 얕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하여 조금은 겸허해지고 계속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게 되는 거겠죠.


다음 세기는 정말 세계화된 시대가 될 것입니다. 저는  세계화된 시대에서 우리가 그동안 정말 가까웠으면서도 지나치게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았던 일본에 대해서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이 알아야겠죠. 이제 우리는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뭔지는 알만한 지적 수준이 되지 않았을까요?


올바르게 취사 선택할 수 있으면서 소위 질 나쁜 싸구려  문화도 나에게 맞지 않고, 좋지 않은 걸 깨달으려면 누군가의 잣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잣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안목들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졌으면 합니다. 당신의 문화 안목 높이기의 파트너에 제가 언제나 함께 하기를 바라며....



2003.8.6 오전


푸른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