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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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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샘

푸른샘142 시린 무릎 감싸 안으며

SHADHA 2004. 2. 1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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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샘




<시린 무릎 감싸 안으며...>

08/26








 


<시린 무릎 감싸 안으며...>


삿보로는 千歲(치토세) 공항에서 내려서 두 시간 가까이를 버스로 가야한다. 숙소는 스스키노라는 신흥 유흥가에 있었다. 삿보로의 날씨는 여름 최고온도가 24도라더니 역시 완연히 시원하다. 게다가 오래 버스를 타고 가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아기자기한 풍경 때문에 지루하지 않다. 시내에 들어서자 빨간 사과를 가득 실은 트럭이 지나간다. 정말 먹고싶게 탐스러웠다. 이곳의 후지 사과는 유명하댔지. 그러나 잘은 모르지만 샌프란시스코의 붉고 윤기 나는 좀 길다란 사과 맛이 세계 최고일거다. 올랜도행 비행기를 놓치고 기다리는 동안 비행사에서 주는 보상 식사 티켓으로 사과 여섯 개를 사서 다 먹었다. 그리곤 사과 맛으로 비행기를 놓친 기분을 상쇄하고 행복해 하던 것이 작년이다. 그래서 샌프란에서는 머리에 꽃을 꽂기보다는 꼭 사과를 사서 배를 채우라고 말하고싶다.


아무튼 삿보로에는 많은 기대가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아오리 사과나 속이 붉은 메론, 삿보로 맥주 그리고 우동, 징기스칸 구이로 먹는 양고기, 뜨거운 카레와 된장 라면, 무엇보다도 북해도 바다에서 잡히는 대게와 털게를 먹을 일이다. 우리가 묵은 스스키노 그린 호텔은 中島공원과 大通(오도리) 공원 사이에 있어서 먹을 것이나 주변 구경거리를 찾는 데도 아주 용이한 곳이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히 들리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의 근본을 찾으니 오르골을 살 수 있는 가까운 오타루에 다녀오길 권한다. 프론트의 사람들은 얼마나 친절한지 지금 바로 오타루 가고 오는 국철 시간표를 일일이 적어서 만들어준다.


3시 44분 삿보로역 출발, 오타루행 4시 16분 도착의 국철을 탔다. 출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오타루지꼬까지 계속되는 해안선은 정말 환상적이다. 깊고 푸른 물이 넘실대는 해안 아주 가까이 몇 미터 곁으로 기차는 증기기관차처럼 삑 삑 소리를 내며 달린다. 고압선이 달린 철탑 사이로 두 번의 터널을 지나면서 설국의 하얀 풍경을 그려봤다. 터널의 어두움은 항상 잠시 현실을 지우며 깊은 상상의 늪으로 빠지게 한다. 미나미 오타루역에서 내려서 오르골당과 유리 공방들이 있는 시가지를 찾으니 아무도 모른다. 세상에서 단 두 사람만이 이곳에 떨어진 듯 한적한 역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지도를 보면서 찾아간다. 문득 어디선가 은은한 음악이 들리고 저만큼 네거리 길거리에 사람들의 무리가 보인다.


천국의 음악이라는 오르골의 특이한 음색이 시가지에 울려 퍼지는 곳, 오르골당 주변에는 이미 많은 한국인 관광객이 우리 모국어로 떠들며 증기로 에너지를 얻는 시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전시관 안에 들어가니 예술적인 느낌은 전혀 없고 온통 판매하려고 진열해놓은 오르골들로 가득하다. 대단한 일본의 상술로 잠시 환상적 기분이 깨어지는 듯했다. 어렵사리 이곳까지 여행 온 일본의 어린 학생들은 작은 바구니에 몇 개씩 추려 담고 한국의 어른들은 그저 기웃거리기만 한다. 어느 여행사의 가이드가 모이라는 핸드마이크 소리에 다들 우르르 나가고 만다.


이층과 삼층에는 더욱 고가의 오르골이 진열되어 있고 직접 원하는 모양과 음악을 넣어서 핸드 메이드 할 수 있도록 테이블도 놓여있다. 중세 유럽 르네상스 시대 교회 시계탑에 시간을 알리는 기계장치로 사용되던 카리용이 탁상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 변형 발전된 것이 오르골이다. 음량과 화음 그리고 연주시간까지 늘여 발전한 것이 19세기인데, 최근에는 그것을 담는 용기로서 보석함이나 움직이는 인형 등의 세공에 의한 값이 고가의 원인이 된 듯하다. 최근 드라마 올인에서 두 연인이 주석으로 된 오르골의 음악으로 추억을 더듬는 것을 보았다.


아무튼 철없는 나를 위해 하나만 고르라기에 유리 세공으로 만들어 꼬리엔 금물을 칠한 화사한 백조 세 마리가 광섬유로 된 분수 아래를 맴돌고 있는 것으로 골랐다. 음악은 그가 좋아하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를 골랐는데 마침 제작된 것이 없다. 나는 '할아버지의 오래된 시계'라는 피아노소곡이 질리지 않고 좋을 듯해서 그걸 골랐다. 오타루의 야경을 보고오라는 권유를 들은 터라 해가 지기를 기다리며 주변의 가게들을 구경했다. 대부분이 유리 공예 작품과 오르골이 담긴 인형류를 팔고 있다.


북해도 미술관이라는 곳에 들어갔더니 입구부터 온통 과자를 팔고 있어서 잘못 들어온 줄 알 정도인데, 달랑 단순한 작가 한 사람의 그림을 엽서로 만들어서 팔고 있다. 다시 전시실에 들어가려면 상당히 비싼 요금을 내란다. 참 나~~ ... 상술에 반쯤 내둘리면서 유리세공을 실연하는 공방에 갔다. 젊고 예쁜 아가씨 둘이서 유리봉을 가마에 녹이며 유리컵을 만들고 있다. 또 다른 방에서는 역시나 예쁜 아가씨 둘이서 아주 작은 꽃을 만들고 있다. 오타루의 가게들은 조성모의 뮤직 비디오 덕분에 한국인의 돈을 끌어 모으는 것인가? 길거리 벤치에 앉고 보니 바로 앞 가게에서 옥수수를 굽고 있다. 하나를 사서 나눠 먹었다.


길거리에서 파는 가리비 구이와 대게 찜의 냄새가 솔솔 풍긴다. 쪼게서 파는 속 빨간 메론 한 조각을 안 사준다고 퉁퉁 불었더니 저녁으로 대게를 먹자며 마땅한 음식점을 찾아간다. 북일 硝子점과 공방들이 늘어선 길 끝에 무슨 구락부 (俱樂部, 그건 group을 일식 발음하여 굳어진 한자말처럼 된 것인데)라는 유명 대게 전문점에 들어갔다. 우리나라 문화일보 신문지처럼 붉으스레한 종이가 아예 테이블마다 깔려있다. 주문을 받으려 온 점원은 심한 사투리인데다가 어찌나 말이 빠른지 잘못 주문하면 비싼 대게를 곱으로 비싸게 먹게될 지경이다. 그는 일부러 천천히 짚어가며 대게와 털게를 주문하고 삿보로 비루까지 시킨다. 게 다리를 절개할 수 있게 변형된 이상한 가위와 집게 그리고 손 씻는 물이 담긴 폿트가 나왔다. (하마트면 따라서 마실 뻔했다). 씨 푸드 되게 좋아하는 사람은 양적으로 좀 불만인 채 식사가 끝났다.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밤이 시작되어 남청색 푸르른 대기로 가득하다. 여기 저기 색색의 등불이 켜지고 유리제품을 파는 가게들에서 나오는 작은 호롱불빛까지 애틋하고 은은하게 거리를 꾸미고 있다. 오타루 운하를 건너지르는 중앙통로까지 걸으면서 신호등 불빛도 유난히 아름다운 야경에 흠뻑 빠졌다. 항만에 섬처럼 떠있는 배들을 보고 가자 하기에 중앙로를 건너서 해안 쪽으로 나가보니 운하의 수면에 여러 가지 색색의 등들이 떠내려 온다. 네모 난 초롱에 고운 색종이를 바르고 안에 촛불을 켠 것들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바로 1945년 8월 6일, 원폭 투하된 지 58주년 기념일이다. 다리 위에서 기도하는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꽤 숙연한 기분이다. 저 등들은 여기에서 운하를 타고 삿보로까지 흘러가게 된단다.


항만에는 주차장만이 횡덩그레 넓다. 그가 주차장 관리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바라보는 저만큼 어둠 속엔 커다란 배들과 섬의 그림자가 외롭게 보인다. 문득 하늘을 보니 엊그제 떠나올 때 초승달이었던 달이 딱 절반의 반달이 되어 노랗게 비추고 있다. 아, 오타루의 반달! 그리고 시가지를 벗어난 해안선의 검은 어둠과 고요... 장차 누가 다시 나를 오타루에 데려다 줄 것인가? 오슬한 추위를 느끼며 긴소매 가디건을 두르고 오타루역 쪽으로 묵묵히 걸었다. 그는 오타루 정보를 들은 대로 설명해준다. 이곳 항만에 러시아 배들이 정박해있고 이곳엔 러시아인도 많이 온단다. 오오츠크해를 사이에 둔 그들이니까...


건널목을 건널 때마다 들리던 뻐꾸기 소리, 유심히 들어보니 그건 통행인더러 건너가라는 신호음이었다. 물새 소리, 까마귀 소리, 그리고 뻐꾸기 소리까지 일본사람들은 새와 새소리를 되게 좋아 하나보다. 까마귀를 길조라 한다더니... 우리 까치는 그래도 귀엽기나 하지, 그러고 보니 오타루를 떠나는 시간이 내게 한 슬픔처럼 휘감겨 흔들고 있다. 조성모의 가시나무 새도, 러브레타의 여주인공도 아닌 바로 현실의 내 모습을 이 도시의 물빛 야경에 놓아두고 가는 기분, 오타루 운하의 흐린 물길에 띄워두고 가는 기분이 그럴 것이다.


증기기관차 같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지하철을 타고 삿보로에 돌아왔다. 이제 바깥은 어두워서 갈 때처럼 해안은 구경할 수는 없었다. 그저 어둠 속을 질주하듯 달렸을 뿐.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동상이 상징으로 서있는 오사카역에 내려 스스키노 쪽으로 천천히 걷다보니 '개항 50주년 기념 주간'이라는 현수막을 붙인 오도리 공원이 나왔다. 파리의 에펠탑 모양을 본 뜬 커다란 텔레비전 시계탑이 9시24분을 디지털로 보여주고 있다. 옥수수나 감자를 파는 공원 안의 분수대 가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며 시원한 삿보로의 밤바람 속을 걸었다.


사실 쌀쌀한 가을 날씨 같은 삿보로에서는 마음조차 스산해져서 누구나 따끈한 우동이나 라면국물이 생각나게 되어 있다. 해산물 시장을 지나왔기에 계속 호텔까지 걷다가 마침 3대째 계속한다는 우동전문점을 찾아 들어가니 좌석이 없을 정도이다. 이곳 사람들은 문간은 냉랭해도 들어가 보면 항상 안은 꽉 차있다. 스탠드에 겨우 끼어 앉아서 김에 기름소금 칠할 때나 쓰는 그런 작은 쟁반 위에 반찬도 없이 달랑 우동 한 그릇이 다다. 그러나 뭐라 말할 수 없이 각별한 향(다량어?)이 나는 국물 위에 귀이개 만한 스푼으로 고춧가루를 떠서 뿌리고 개운한 그 맛에 객고와 피로를 말끔하게 녹여버리고 자리에 들었다.


*****

살아간다는 것은

       - 이 외 수


살아간다는 것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

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

하루에 한 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

나는
시린 무릎 감싸 안으며
나지막이
그대 이름 부른다

살아간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



2003.8.6

푸른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