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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하얀새79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본문

맑은하늘 하얀새

하얀새79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SHADHA 2004. 2. 19. 22:56


하 얀 새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07/27








이제 또 다시 하루는
오렌지 빛의 이브닝 드레스를 걸치고 느릿하게 만찬의 식탁에 앉습니다.
그녀의 옷자락이 오늘은 하도 눈부시어
아파트 앞 동의 넓은 통 창이 부여잡고 있습니다.

그녀의 우아한 동작은
금새 내집 거실마저 오렌지 빛으로 물들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곤 침대에 엎드려 느릿한 독서에 빠진 나의 종아리를 스치고 지납니다.

지난 유월의 끝자락을 싸 들고 방문한 지인의 누런 세월을 지닌 작은 책입니다.
그러나 너무 무거워 가벼운 그 책이
오늘 저 오후의 햇살처럼 저를 묶어두고 있습니다.
한때 헬렌니어링의 연인이자 세계의 교사로 알려진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제목의 책자이지요.

그는 나를 버리라 하네요.
모든 욕망의 시작이 나이고 모든 공포의 시작이 나라는 것이지요.
나를 버림으로서 기존의 모든 우리의 인식의 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고
나를 버림으로써 욕망을 버린 것이고
욕망을 버림으로써 공포를 잊은 것이고
비로소 아무것도 아닌 무(無)안의 나를 찾는 것이 비로소
완전한 자유를 찾은 거이라 하는 그의 논리 이군요.

그는 이처럼 그의 논리를 이해하는 나의 행위도 결국 머리로써 행하는
또 다른 나의 속박이라 하겠지요.

이세상에 그렇게 외부로부터 주어진 질서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신의 본질로 눈을 돌리는 일이 과연 가능할 것인지,
(그는 가능하다고 보고있지만)
가능하다면 우리는 또한 그것을 깨닫는 순간 또 다른 질서를 발견 하므로써
그가 말하는 생각의 뒤틀림끝으로 또 밀려나는 것은 아닌지 ...
긍정하면서도 다시 부정하는 의구심을 멈출 수 없게 합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아는 것은 결국 전적으로 그것에 대해 모르는 것이므로....

그러나 그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나를 사로잡습니다.
사랑에는 어떠한 의무도 책임도 없습니다.
지금 이글을 읽고 있는 많은 독자들은 반발할 것입니다.
왜 의무와 책임이 없느냐?
어디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냐하고요.
그러나 사랑 본연의 문제에 관하여 생각하여 본다면
금방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가 대단한 정신적 세계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들은 간혹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런말을 종종 합니다.
<정말 뭐가 씌여도 씌였어...눈에 콩꺼플이 덮혔지>라고요.
그렇듯이 우리가 사랑할 때
우리는 비난없이 질투없이 분노없이 비교가 없이 사랑하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의무적으로 하는 어떠한 일에 우리는 애정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에는 의무를 동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완벽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사랑은 언제나 그렇듯
능동적인 현재이여야 하는데 우리의 삶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렇게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고
오로지 내 자신의 본연의 정신상태에 충실할 수 있는 죽음의 문턱에서야
알게되는 감정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책임 또한 동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 함께 영위할 수 있는 복잡한 사랑이 더 마음에 듭니다.
함께 분노하고 기쁨을 나누고 고통받으며
누더기처럼 헤어진 치열한 사랑을 꿈꿉니다.
그 또한 능동적인 현재이지 않습니까?
그러한 사랑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또 다른 사물의 정수를 토해내기도 하니까요.
사랑이란 끊임없이 생성되기도 하며
또한 움직이는 가운데 얼마나 많은 발자국(그 아름다움 문학작품들,
열정적인 그림들, 그리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음악들....)들을
남기는가 말입니다.


한 인간의 철학을 생각해 봅니다.
그가 생각하는 어떤 진리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그는 얼마나 자신을 버리고 채우기를 반복했을까요?
그렇게 탄생한 한 인간의 생각은 어쩌면 괘변일지도 모르고
아주 집요한 본연의 진리일지도 모릅니다.
늘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돌아오니까요.
하지만 그러한 그들의 목소리에 우리는 귀 기울이므로써
매일같이 혹사당하며 수많은 우리의 정신적 난기류를 극복하려는
가상한 우리의 삶에 일종의 반환점은 제시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상가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우리의 내적인 혁명을 도발하려 하는 것이겠지요.

누렇게 변해버린 작은 한 권의 책에 실어본 여름날의 하루가
아직도 아쉬운지 노을을 가슴가득 안고
서해안의 수평선 저너머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하얀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