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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海雲 최치원과 동백섬 본문

靑魚回鄕(부산)

海雲 최치원과 동백섬

SHADHA 2007. 7. 16. 00:06

 




海雲 최치원과 동백섬

7월 해운대





거칠은 밭 언덕 쓸쓸한 곳에
탐스런꽃소이 가지 눌렀네.
첫 여름 비 갤 무렵 가벼운 향기
보리 누름 바람결에 비낀 그림자.
수레 탄 어느 누가 와서 보리오.
벌나비만 부지런히 서로 엿보네.
본시부터 천한 데 태어났기로
사람들의 버림받음 참고 견디네.

...최치원 < 蜀葵花 접시꽃>....






최치원은
경주최씨(慶州崔氏)의 시조.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869년(경문왕 9) 13세로 당나라에 유학하고,
874년 과거에 급제, 선주(宣州) 표수현위(漂水縣尉)가 된 후
승무랑(承務郞) 전중시어사내공봉(殿中侍御史內供奉)으로 도통순관(都統巡官)에 올라
비은어대(緋銀魚袋)를 하사받고, 이어 자금어대(紫金魚袋)도 받았다.
879년(헌강왕 5) 황소(黃巢)의 난 때는 고변(高騈)의 종사관(從事官)으로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초하여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894년 시무책(時務策) 10여 條를 진성여왕에게 상소, 문란한 국정을 통탄하고 외직을 자청,
대산(大山) 등지의 태수(太守)를 지낸 후 아찬(阿飡)이 되었다.
그 후 관직을 내놓고 난세를 비관,
각지를 유랑하다가 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에서 여생을 마쳤다.

해운대(海雲臺)란 지명은
최치원이 난세를 비관한 끝에 해인사로 들어가던 길에 이곳에 이르러 절경에 감탄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유래되고 있다.
동백섬 동쪽의 해벽(海壁)에는 최치원이 <해운대>라고 새긴 바위가 있다.
섬 정상부에는 동백공원이 있고, 울창한 소나무 숲의 공원 내에는 최치원의 동상과 詩碑가 있으며,
해운정이라는 정자가 자리잡고 있으며
오래된 소나무 숲사이로 해운대 달맞이 언덕과 멀리 오륙도가 보인다.

...관련자료글 편집...


































Adag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