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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라흐마니노프와 서혜경 본문

告白과 回想

라흐마니노프와 서혜경

SHADHA 2008. 1. 25. 00:09

 




라흐마니노프와 서혜경

피아노 협주곡 2번과 포기해서는 안될 건축





....무대에도 객석에도 불이 꺼졌다.
객석에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이 자리를 허락해주셔서….

피아니스트 서혜경(48).
지난 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KBS교향악단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 3번 협연을 한 그녀는
지난 2006년 10월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연주회를 강행하려는 그녀에게 의사는
<피아노와 삶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주저 없이 피아노를 택했다.
피아노 없는 삶은 의미가 없었기에.
하지만 암세포는 이미 오른쪽 겨드랑이 림프절까지 절제해야 할 정도로 넓게 퍼진 상태.
주치의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데 필요한 신경과 근육조직은 남겨두고
암세포만 제거하는 초정밀 수술을 했다.
서씨는 1년여 동안 33차례의 방사선 치료를 견뎌내고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지만
전성기 때의 기량을 보여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기억력을 갉아먹는 항암치료 때문에 악보를 외우지 못할까 두려웠고,
재발의 공포는 한밤중 잠든 그녀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다.
이날 연주 때도 후유증은 남았다.
수술받은 반쪽 팔은 연주 중간에도 주물러야했고
협주곡 2번에선 악보를 잊은 듯 건반을 잘못 누르기도 했다.
완벽주의자인 서혜경에게서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집중력이 좋아진 2부에서 그녀의 라흐마니노프는 폭풍같이 몰아쳤다.
클라이맥스에서 벌떡 일어나며 건반을 내려칠 때
왕년의 암사자 서혜경은 분명 완벽히 돌아왔다.
협주곡 3번 3악장이 끝났을 때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4번의 커튼콜을 보냈다.
연주를 마치고 무대 뒤로 사라진 것은 피아니스트 서혜경이었다.
33차례의 방사선 치료를 받은 아픈 환자는 없었다....신문기사 편집


혼자하는 식사가 외롭게 느껴져서 신문을 펼쳐놓고 기사들을 읽으며
스스로 외롭지 않게 서둘지 않고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싶었는데,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 상단의 기사에 빠져 끝까지 그 기사를 다 읽고 난 뒤에야
다시 수저를 들 수 있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3차례의 방사선 치료를 견뎌낸 서혜경>

많은 클라식 음악중에서도 유독 알비노니의 <아다지오>와 함께 가장 즐겨 듣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기에 그 기사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 기사를 읽고난 다음 나는 많은 생각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인간의 행복과 성공을 좌우하는것이 <지능>이라기보단 <정서>라는데에
많은 심리학자들은 의견을 모은다고한다.
러시아의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인 라흐마니노프는
한때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작곡활동 중단 물론 몇번이나 자살충동에 시달려야 했다.
이를 극복 해내고 난 후 첫 작품이 그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2번>
그 당시 그를 치료했던 정신과 의사에게 헌정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작곡 당시 작곡가의 정서가 담긴 곡을 통해 비슷한 정서를 가진 다른사람에게
심리적위안을 준다는 것이 음악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동질성의 원칙>이라고 한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우울증환자에게 가장 널리 치료되는 곡이라고도 한다.
20세기 초 가장 탁월한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이었으며
낭만파의 마지막 작곡가이기도 한 라흐마니노프와 그를 연주한 서혜경.
그리고 요즘 들어서 곧잘 우울증에 빠져드는 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그 가운데에서 동질성을 형성하고 있었다.

자살충동에 시달릴 정도로 심한 우울증에서 벗어나 최고의 곡을 작곡한
라흐마니노프와
초정밀 수술과 33차례의 방사선 치료, 목숨과 바꾸지 않는 음악사랑으로
피아노 연주를 선택한 서혜경.

라흐마니노프와 서혜경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지칠대로 지쳐서 우울증에 때때로 빠져들며 나의 직업에 대한 회의를 느끼던
나는, 삶이 끝날 때까지 나의 직업 <건축>을 결코 이대로 포기해서는 안되며
자신감 결여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 날이 되었다.

지난 늦은 가을, 미국에서 큰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재미교포 사업가인
K박사라는 사람을 지인의 소개로 부산에서 만났다.
그는 그의 고향, 한국땅 부산에다 상상치도 못할 만큼의 대규모 프로젝트.
예술성과 상징성도 강하고, 규모 및 공법 또한 엄청나게 파격적인 건축물들을
장기적인 계획으로 세우고 싶다며 내게 그의 생각과 꿈을 설명하고
몇 차례의 만남속에서 나의 컨셉을 다 들은 다음, 그는 진지하게 제안했었다.
그 프로젝트의 계획과 설계에 대한 모든 권한을 내게 일임하고 싶다고 했었다.
순간 나는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에 빠져 들었다.

...박사님, 이런 프로젝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디자인에 참여해야 하고
세계적인 건축가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제게 그런 능력과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능력이 많이 모자라기 때문에 다른 실력있는 분을 선택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굳이 제게 꼭 기회를 주시겠다면 참여 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저는 영광입니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 분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습니까 ?
세계적인 작가나 예술가, 건축가들이 어떻게 탄생합니까 ?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이루어내면 가능한 것입니다.
선천적인 자질과 재능도 중요하지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스스로를 지나치게 낮추는 겸손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1차 준비를 마치고 다시 돌아 오겠다며 떠났다.
그 이후에도 나는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점점 더 깊은 좌절속에 빠져 드는 일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짙은 회색빛의 어두운 일상속에 자신을 묻어 놓고 있었는데,
라흐마니노프와 서혜경의 혼을 불사르는 투지앞에
깊어지는 겨울 밤에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으며
가슴속 한켠에다 결코 꺼지지 않는 불꽃을 피워놓기로 했다.




음악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1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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