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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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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白과 回想

숭례문과 낙산사

SHADHA 2008. 2. 13. 21:52

 




숭례문과 낙산사

문화유산관리에 관한 有感





숭례문이 불타고 있는 장면을 바라 보면서 나는 경악을 금할 길이 없었다.
넋을 놓았다가 이내 분노로 변해�다.
2005년 4월 5일 양양 낙산사의 소실 때 느끼던 분노보다 훨씬 더 큰 분노가
가슴을 덮어 망연자실하게 했다.
낙산사 화재 때에도
모든 언론 매체들이 지금처럼 문화재 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연일 떠들어 댔고,
정부나 문화재 관리청도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문화재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하였으나 그것은 형식적인 말 뿐이었다.
그 후 3년이 채 지나지도 않아서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을 태웠다.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불을 지른 70대 노인이 숭례문을 태운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형식적인 문화유산관리를 해 오던 대한민국이
후손 대대로 물려주어야 할 자랑스런 우리의 귀한 유산을 태운 것이다.

우리의 문화유산들을 둘러보던 나는 2005년 6월에 <문화유산관리에 관한 有感>을 적었다.

....소유하고 있는 땅은 비록 작지만
예로부터 근면 성실하고 타민족에 비해 머리가 좋고
어떤 특정적인 부분의 승부근성이 강하여 이제는 경제적인 국력으로도
세계의 그 어떤나라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강국이 되어가고 있는
그런 대한민국에게
건축인으로서 느끼는 유감은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의 관리에 관하여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병자호란,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 6,25동란으로
많은 문화유산들이 소실되거나 유실되고 훼손되어 그리 많이 남아있지도 않은 것을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기관이나 사람들은 형식적이거나 구태의연하게 관리하는 것 같다.

젊은 시절 업무상 출장으로 세계를 돌아 다닐 때는
솔직히 우리 조상들의 무능력을 탓한 적이 있었다.
유럽의 엄청난 규모와 화려한 궁성들과 조형물과 공원,
잘 보전된 많은 문화유산들...
우리보다 후진국이라 느끼던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유산들에 비해서도,
또는 일본에 비해서도 우리의 문화유산은 초라하다 못해 왜소하게도 느껴졌었다.

다양성에서도 눈으로 볼 수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은
서울에 있는 조선시대의 궁궐 몇 개를 제외하면 거의 다 사찰이거나 석탑,
또는 작은 규모의 서원들...
규모나 화려함이나 그 數에서도 월등히 작고 소박하고 적다.
그래서 우리의 것을 비하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드는지, 때로는 자연인으로서,
때로는 건축가로서
우리의 문화유산을 재조명해 가며 그 깊은 맛을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초라하고 왜소하게만 느끼던 우리의 문화유산이 너무도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요즘은 틈나는대로 우리의 문화유산곁으로 달려간다.
서울의 고궁들은 아쉬운 점은 많지만 그나마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신라의 古都 <경주>나 가야의 古都<김해>등 거의 대부분의 문화유산관리는
새로 짓는 기념관이나 박물관만 크고 거창하게 건축할 뿐,
오랜 문화유산들의 관리는 지극히 형식적이고 엉터리다.

관광안내 간판만 커다랗게 붙여놓고 입구에 입장료를 받는 매표소만 만들어 놨을 뿐...
정작 그 문화유산앞에 서면 한숨부터 나오기 일수이다.
어떻게보면 그 문화유산을 이용하여 돈버는데만 급급할 뿐,
그 귀중한 문화 유산,
우리들의 후손들에게 다시 물려줄 문화유산의 관리는
세계 어느나라에 비해서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것 같다.
형식적이고, 비전문적이며, 관리감각도 없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유산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문화유산은
우리가 잘 먹고 잘 살고 잘 입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가 챙겨야 할 귀중한 보물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가치이며 자존심이도 하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민족의 자긍심이기도 하다.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관리.
최악의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아프다.

....2005.06.19 <문화유산관리에 관한 有感 >중.....


2005년 7월, 매연이 대기중에 가득하게 낀 여름날.
서울 출장갔다가 숭례문 개방을 위해 광장공원 공사가 마무리 작업하고 있을 때
나는 겸연쩍은 마음으로 숭례문을 찍어 블로그에 올렸었다.

...<운명은 이처럼 문을 두드린다>
나는 개인적으로
베에토벤의 제 5번 교향곡 <운명>을 아주 좋아한다.
장엄함과 확신에 가득찬 음률로 운명의 문을 여는 듯한
이 불후의 명곡이
너무도 많이 연주되고 대중화되어 자칫 통속적인 음악으로 인식되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 자신조차도 누가 나에게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라흐마니코프의 < 피아노 협주곡 제2번>과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라고 말하며
<운명>을 슬며시 뺀다.

우리나라의 전통건축물 중 남대문이라 불리우는 숭례문.
대한민국 국보 제 1호.
모든 국민이 너무도 잘아는 남대문, 그 숭례문을 올리려고 하니
왠지 베에토벤의 교향곡 <운명>이 연상되어진다.
너무나 잘 알려진 것을 소개하는 민망함.
그러나 지금까지의 남대문은 도로의 중앙에 위치하여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없었고
달리는 차의 매연속에 갇혀 있어 있었는데,
남산으로 오르는 차로를 폐쇄하여 공원화 시키고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있도록 재정비를 하고 있었다.
그 연유야 어떻든 대한민국 국보 제 1호인
숭례문이 제 모습 찾아가는 현상이 늦기는 했지만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2005.07.28 < 숭례문 >....

















4월 5일 식목일
대구 팔공산 은해사에서 다시 3.5km.
깊고 깊은 팔공산 산정의 작은 암자.
중암암에서 갓 봉오리를 피우는 하얀 목련아래
고운 비구니 스님과 茶를 마시며 휴일의 담소를 나눌 때,
갑자기 화두가 된 강원도 산불.
대구시내로 내려와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할 때야
낙산사가 불에 타 전소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낙산사...

1300여년전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세운 오랜 사찰.
동해바다를 내려다 보고 앉은 아름다운 고찰.

보름전 설악산 방문시
동행한 일행들을 오랫동안 주차장에서 기다리게 하면서
구석 구석을 돌며 사진을 찍고 산책하던 낙산사.
아직 최근의 글들의 목록에 남아 있는 낙산사.

아름다운 홍예문.
문틀의 문양이 너무도 아름다웠던 古香室.
7층 석탑과 대웅전.
해수 관음보살상으로 가는 고즈녁한 오솔길.
아직 그 향기가 어제인 듯 생생한데,
다 타버려 사라졌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나마 관동팔경 의상대와 홍련암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니 다행이기는 하나
너무도 큰 것을 잃었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미국의 무역센터같은 현대 건축이라면
더 크고 멋진 건물로 다시 탄생 할 수도 있겠으나,
다시 낙산사를 복원한다 하더래도
천년을 두고 쌓은 오랜 역사의 香은 어떻게 할까 ?
아쉽고 또 안타깝기만 하다.


.....2005년 4월 <낙산사 소고>....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들...
이제는 더 이상 잃지 않도록 모든 사람들이 진심으로 아끼고 보존하여
우리의 후손들에게 아름답고 자랑스런 유산으로 남겨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가져본다....


음악 : 세상에서 가장 슬픈 클라식 : 퍼쎌...디도의 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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