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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여름날 저녁무렵 정동길을 거닐며 본문

한강 독백(서울)

여름날 저녁무렵 정동길을 거닐며

SHADHA 2008. 7. 15. 19:17

 




여름날 저녁무렵 정동길을 거닐며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이제 모두 세월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던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광화문 연가>....


 오후 6시 개성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린 곳은 광화문.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는 작은 딸과 만나기 위해 혼자 걷기 시작했다.
 퇴근해서 오는 딸과의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울역까지 걷기로 한 것이다.
 경희궁 거리를 따라 걷다가 정동길로 접어들었다.
 낙엽지는 가을 산책길도 아니고,
 눈덮힌 풍경이 있는 겨울의 정동길은 아니였지만,
 북한 땅 개성에서 일을 잘 마치고 돌아온 안위감과
 사랑하는 딸과의 저녁식사 약속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살짝 기분이 들떠있는 느낌으로 걷는 아주 편안한 산책길이여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나즈막히 <광화문 연가>를 부르고 있었다.
 시네마 정동앞을 지나고 프란치스코 빌딩, 예원학교 뜰을 잠시 거닐고,
 붉은 벽돌 이화여고 담장길을 따라 걸었다.
 보수공사중인 중명전앞을 잠시 서성거리다가 정동극장 광장에 머문다.
 서울 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공원을 돌아 덕수궁 돌담길을 거니는 여름날 저녁무렵.
 참으로 아름다운 거리를 아름다운 마음으로 걸으려 했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고뇌많은 일상속에서도 때때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부산행 9시 10분 열차표를 예매하고 돌아서니 보고 싶었던 작은딸이 웃으며 다가온다.
 어쩌면 일을 하러 개성 가는 것보다 딸을 만나러 오는 것이 더 간절한 일이였을 것이다.
 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잠도 설쳐가며 강행한 무리한 일정으로 쌓인 피로가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빠, 오늘은 내가 아빠가 좋아하는 스테이크 살께...
 ...임마, 너 왜 이래 ? 누구한테 사주 받았니 ?

 외모나 성격이 나를 닮은 큰 딸은 감성적이고 씀씀이가 크고 즉흥적인 경향이 있어 인심이 좋은 반면
 매사에 현실적인 아내를 닮은 작은 딸은 계산적이며 야무져서 헛된 돈을 쓰지 않는 편이다.
 그런 작은 딸이 느닷없이 인심을 쓰는 것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고급 레스토랑으로 가자는 딸을 설득시켜 역 근처의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갔다.

 ...아빠, 우리 와인도 한잔씩 하자.
 ...너 갑자기 왜 그래, 네가 무슨 돈이 있어 ? 아빠가 살께...
 ...아빠, 나 여름 휴가비 받아서 돈이 많어...

 딸과 함께한 1시간 반의 시간, 행복한 식사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많이 컸다. 품에 안겨 어리광 피우던 아이가 벌써 이렇게 커 아빠에게 사업에 대한 조언과 충고도 한다.

 ...아빠, 기차시간 늦추고 우리 맛있는 커피 마시러 가면 안돼 ?
 ...아빠도 너하고 더 많은 시간 갖고 싶지만 내일 일때문에 내려 가야 돼...

 아빠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딸의 배웅을 받으며 부산행 기차를 탔다.
 환하게 웃는 사랑하는 딸의 얼굴이 열차 차창에 어려 왔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큰 포만감과 함께 이내 깊은 단잠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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