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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백양산 편백나무숲 2020년 봄 산책 본문

靑魚回鄕(부산)

백양산 편백나무숲 2020년 봄 산책

SHADHA 2020. 4. 17. 14:59



백양산 편백나무숲 2020년 봄 산책

2003년~2020년



인위적인 사회 속에서 도피하고 싶어 하는 나는
순수한 자연 속으로 도망을 쳤다.
요즘은 하루 걸러 한번씩 도망을 친다.


그 도피처에서 순수한 자연을 자주 만나 친해지다 보니
예전에는 미처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내게 보여 주었다.
그 속살과 속마음을 열어 주었다.

언제나 자연인으로 살고 싶어 하면서도
전형적인 사회인의 굴레를 스스로가 쓴다.
목에도 굴레를 걸고,
다리에도 그 굴레를 걸고 하여
헤쳐 나올 수 없는 속인이 되고 나서야
늘 자유로운 자연인이길 원한다.
내 몸 안에 흐르는 피가 그런 모양이다.
이제는 피해 갈 수도 없는 길목에 서서
종잇장처럼 얇은 살얼음판이 깔린 겨울 강을 건너야 하는
가난한 어부처럼,
높디높은 절벽사이에다 외줄 하나 걸어 놓고 줄타기를 하는
어쩔 수 없는 삶을 가진 곡예사처럼,
숙명이거나, 스스로가 만든 운명이거나 간에
선택의 여지없이 헤쳐 나아가야만 한다.
버티다 버티다 더 버틸 수도 없을 때
자연 속으로 도피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나 순수 자연의 도피처로 들면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
그동안 선인들이 자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귀에 담아 듣지 않았다.
그저 멀리서 숲을 보고, 나무를 보고, 꽃을 보았을 뿐이다.
깊은 곳에 있는 생명의 노래를 듣지 못했었다.
그 순수 자연이 가슴을 열고 보여주는 마음을 보지 못했다.
이제 그것을 배워간다.
도피처에서...


어떤 사유로든지,
현재 내게 주어진 운명.
그것이 고통이거나 죽음이라 할지라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 순수 자연 속에서
다시 배운다.
어떤 생명이든 그 생명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을 숲 속에서 보았다.
그것은 예술이며 미적 가치이다.
가치가 있다는 것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고민에 빠지거나,
어슬렁거리며 초조하게 기다리거나
분노해 하거나 우울한 시간에  그리 산으로 올라 자연 속으로 든다.
그러면 그 자연이 다 잊게 해준다.
가슴에 초록빛 산소를 불어 넣어주고,
눈에 보이는 것은 아름다운 자연 미술관의 화폭들...
새들의 노래와 다람쥐들의 숨바꼭질 놀이.
개울의 작은 물소리까지 친구 삼아.

그리고 그 자연 속으로 더 가까이 들면
생전 처음 보는 환상적인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있다.
그 속에 머물다 보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그것을 초월하게 해준다.
그것을 초월하고나면 두려움이나 모든 미움이 사라진다.
그것이 순수자연이 주는 교훈인 것 같다.
최소한 나는 그리 느낀다.
순수 자연 속에는 절망이라는 것이 없다.
그 모든 것이 그것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나름대로의 역할들을 한다.
개울가에 선 나무들은 나무들대로,
양지에 서거나 음지에 서거나
그들은 늘 그 자리에서 서서
꽃을 피우거나, 숲을 이루거나, 새의 둥지가 되거나
이끼의 잠자리가 되어준다.
아무런 불만이나 불평도 없이,
그것이 자연의 위대함이다.

순수 자연 숲 속을 거닐 때면
나는 아무런 시름도 없이
화랑을 거니는 미술 애호가가 되고
음악을 연주하는 지휘자가 되고
마르셀 프로스트 같은 작가가 되기도 하고
햄릿의 무대 연출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리운 이의 환상과 산책한다 .
자연 속에서는 무엇이든 무한하다.


.....자연의 극치는 사랑이다.
  사랑에 의해서만 사람은 자연에 접근할 수 있다.....괴테...


순수 자연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이 다가가
자연의 냄새와 모습을 바라보세요.
아름답고 신비한 그리고 숭고한 생명의 사랑빛이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삶을 느끼게 됩니다.


............2003년 성지곡, 백양산 가을의 추상



나는 그들이 거기서 그대로 서 있는 줄로만 알았다.

길을 사이에 두거나 개울을 사이에 두고

하늘만 바라다 보고 그렇게 무심히 서 있는 줄로만 알았다.

아 !

그 숲안에 장엄한 생명의 노래가 흐르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다.


비브라토의 여리고 가는 오보에의 잔잔한 연주에 이어지는 클라리넷.

저음부의바순에 이어 잉글리쉬 호른의 연주까지

목관악기들의 잔잔한 숲의 서곡이 연주되면서

하늘이 열리고 숲이 열리기 시작했다.

평온함속에 살아 숨쉬는 생명들의 노래가 목가적이다.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오르니

숲의 현악기인 각종 곤충들의 노래소리가

작은 숲의 목관악을 베이스에 깔며 연주되기 시작했다.

바이얼린과 첼로 그리고 비올라,

이윽고 발현악기인 하프의 고운 음색까지 조화를 이루워 나간다.

하얀구름과 푸른 하늘,

작은 개울과 낙엽사이로 청아하거나 두툼한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숲이 깊어지면 질수록

점점 그 숲의 노래는 강해지고 선명해진다.

트럼펫과 트롬본, 튜바와 호른

금관악기인 각종 새들의 노래가 어우러져

아름다우면서도 점점 더 강해져서 숲의 교향곡

그 절정을 향해 치닫아가고 있었다.

어두워지는 숲.

하늘을 가려가는 숲.


밤보다 더 어두운 숲에서

목관악기와 현악기와 금관악기.

높고 큰 나무숲사이를 빠져나온 가을 바람소리가

피아노음이 되어 어우러지면서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아름다운 교향곡이다.

내가 살던 세상이 없어져 버렸다.

푸르름과 산소와 동화속같은 신비한 숲의 세계

아!


이윽고 숲이 끝나고

그 산 정상에 올라서니 서쪽 먼산으로 넘어가는 해.

찬연하게 빛나는 그 끝빛을 만나는 순간.

내 심장 타악기들의 연주가 빠른 템포로 합류하여

숲속 교향곡의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닫는다.

쿵,쿵,쿵,쿵....

환희롭다.

자연이, 숲이 이렇게 웅장한 교향곡을 연주하리란

상상도 못했다.


....2004년 <숲의 교향곡>


2001년~2006년 까지 거제리 법원앞에 사무실이 있을 때,

머리가 복잡할 때는 차를 몰고 성지곡 수원지로 와서 차를 세워놓고

성지곡 수원지를 돌고 백양산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올라서 만남의 숲을 지나서

백양산 바람고개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걸었었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구두를 신은 채,

그때는 mp3도 없었고, 핸드폰에 음악을 저장해서 다닐 수도 없어서 음악도 없이 깊은 상념에 빠져 걸었었다.


그후로도 성지곡 수원지는

자주 가족들과 함께, 또는 아내와 함께, 때로는 사업상 지인과 함께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던 곳이지만,

아내와 함께 백양산 중턱 편백나무 숲이 있는 만남의 숲에서 바람고개까지 걷는 산 중턱길 산책은

블로그에 남겨진 기록으로는

2012년 7월, 2014년 11월, 2015년 10월에 이어 이번이 4번째 인 것 같았다.

아내와 이 길을 걸은 것이 얼마전인 것 같은데 벌써 5년 전이다...세월이 무상하게 지나갔다...

그때는 두사람 다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 아내는 허리 협착증세가 있고, 나는 좌골신경통이 있다고 하여 걷기에는 문제가 없으나 조금은 불편하다..


그래도 아직 아내와 같이 편백나무 숲길을 걸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