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1999년에서 2024년 본문
예전에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삶과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공존하는지를.
그것은
나와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일상처럼
와 있음을 처음 알게 되었다.
죽음은 언제나
바로 우리 곁에 검은 옷을 입고
서 있었다.
............. 1999년 10월 심부전으로 처음 해운대 성심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면서
니콜 키트만
1.
콧구멍으로 바람이 든다.
아주 미미한
생명 바람이 든다.
오늘이었는지, 어제였는지,
영안실로 실려나간 사람의 냄새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병상에 눕혀진 채
산소 호흡기가 코에 꼽혔다.
한 달만의
깊은 수면에 빠졌다 잠시 눈을 뜨니
중환자실로 처음 들어설 때,
하얀 커튼을 사이에 둔 바로 옆 병상에서
심한 구갈증의 기침을 해대던 할머니가
가족들의 나지막한 울음소리와 함께
영안실로 옮겨지고,
간호사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하얀 새 시트를 깐다.
죽는 자와 사는 자가
어느 길로 가든
대기하며 기다리는 공간을
하얀 커튼으로 구획하여 공유하는데..
나는 살아남는 쪽에 속하는 것 같았다.
누가 그리 말하지는 않았지만
간호사들의 눈빛에서 그걸 알았다.
전혀 연민의 빛이 없었으니..
플라스틱 소변 통을 건네줄 때
쌔액 웃는 간호사의 미소가
아직 나를 사람으로 보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2.
또 하루가 지났다.
맞은편 병상에서 밤새 살려달라며 외치던
중년 남자가
잠깐 잠이든 사이
보다 큰 병원으로 이송 중에 죽었단다.
생존자로서 존재할 때에 마주쳤던 그 눈빛이
잊히질 않는데,..
그리고
또 잠이 들었다.
평생 이렇게 잠을 많이 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잠결에 어렴풋하게 들리는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과자 먹는 소리에 잠을 깬 새벽.
죽는 자는 죽고,
산 자는 그냥 산대로 산다.
.. 톰크루즈 부인 있잖아..
.. 아! 그래, 그래, 그 예쁜 여자, 이름이 기억 안 나네..
하얀 커튼으로 둘러쳐진 나의 공간 너머 형광등 불빛.
그 아래 당직 간호사들의 수다 떨기는 계속되고 있었는데,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자로서의 확인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커튼 너머로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 니콜 키트만!
..!!!
.. 그래! 니콜 키트만이야..
커튼이 열리면서 상큼한 사과향 냄새와 함께
예쁘장한 간호사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 잠 깨셨네.. 저녁 내내 주무시더니..
살아있는 젊고 예쁜 여자의 냄새는 언제나 상큼하여 좋다.
그러나 살고 죽는다는 것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도 같다.
... 1999년 10월에... shadha의 <고백과 회상>중에서...
1999년 IMF외환 위기 사태로 모든 것을 다 잃고 파멸에 들었을 때,
내가 설계했던 병원 중환자실에 심부전으로 입원했었다.
그리고 25년 후인 지금 2024년 1월 나는 또 심부전으로 백병원에 입원했다가 며칠 전 퇴원했다.
25년 전인 그때에 비하여 심장 기능이 현저하게 저하되었고 신장 기능까지 같이 나빠졌다.
이번에 입원했을 때, 심장 초음파 검사를 하고 난 후, 나를 처음 담당한 전공의가 아내와 딸에게 전화하여
나의 심장 기능이 많이 안 좋다고 염려했다고 한다.
물론 2010년부터 나를 진료해 온 담당의사 교수는 크게 개의치는 않고 2월에 새로운 심부전 약이 나오니까 추가하여
처방해 보자는 이야기를 하였다.
삶의 끝으로 향하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죽음에 관하여 크게 개의치 않는다.
사업에는 크게 실패했으나 아내와 딸들의 헌신으로 건축사로서 행복한 삶을 살았다.
나의 심장이 멎는 날까지 그렇게 행복한 날들을 영위할 것이다.
살고 죽는다는 것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도 같은 것이니까.....2024년 1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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