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옥련선원에서의 7,000배 본문
마지막 7,000배를 다한 날은
옥련선원에서 내려오는 길목에서 어슴프레한 광안리 밤바다를 바라볼 때,
머리에서 흠뻑 젖었다 마른 땀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서 말려주는데,
이 세상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듯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동쪽에 위치한 백산 옥련 선원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찰이다.
IMF사태 이후 모든 것을 다 잃고 난 후인 2,000년,
마지막 남은 집마저 압류되어 경매로 넘어가서 우리 가족들이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었다.
설상가상으로 모든 것을 다 잃은 충격으로 심장병을 얻어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회복이 다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서 낙찰받은 사람으로부터 집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은 처절한 상황이었다.
그리고는 며칠 지나지 않아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집을 이사할 수 있는 돈, 단 돈 10만 원도 없이 가난해졌던 우리에게 오랜 건축주였고
친구 같은 병원 재단 이사장이 평소 꾸준히 자기를 도와주고 병원에 입원 전, 늦게까지 야근을 계속하며
병원 프로젝트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 사업계획서로 국가에서 운영하던 병원을 인수받을 수 있었다며
그 고마움으로 그 집안의 소유 건물이었던 5층짜리 건물에서 내 집처럼 살게 해 준 것이었다.
오랫동안 임대도 안되고 매매도 안되던 낡은 건물을 친구와 의형제들 도움으로 새 건물처럼 수리를 다했는데,
그러나 갑자기 그 5층짜리 건물이 매매가 되고 새로 건물을 구입한 사람이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하여 좌절의 시간을 보낼 때, 우연히 광안리 수변공원에서 만난 어떤 스님이 나의 사연을 다 듣고 나서
나에게 하루에 1,000배씩 7일간 7,000배를 마음이 따라 가는 절에 가서 하라고 했다.
자신 없으면 아예 시작부터 하지 말라는 충고와 함께....
그래서 해 질 무렵에 가서 5시간씩 하루에 천배를 올리는 기도를 한 곳이 백산 옥련 선원이었다.
처음엔 무릎이 터지고 제대로 걸음을 걸을 수 없어 기어 내려오다시피 했던 고통스러운 날들이었다.
옥련선원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간절한 마음을 소원하고 머리와 이마에는 땀이 빗물처럼 흘렀다.
하루, 하루 시간이 가면 갈수록 몸과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했고
마지막 7,000배를 끝내고 나오던,
옥련선원에서 내려오는 길목에서 어슴프레한 광안리 밤바다를 바라볼 때,
머리에서 흠뻑 젖었다 마른 땀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서 말려주는데,
이 세상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듯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그리고는 며칠 지나지 않아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당시 우리 경제적 능력으로 이사 갈 수 있는 곳을 알아보니 좌천동 산복도로 위 가파르고 높은 계단 위
주택의 2층의 작아도 아주 작은 집.
그 집에 가서 계약금을 주고 돌아나오는데.걸려온 전화 한 통.
교통부 5층 건물을 매입한 사람이 잔금을 치루러 갔는데 외국으로 출장 갔던 병원 재단 이사장이 돌아와서
잔금을 깎아주며 우리가 그 집에서 계속 살게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2001년부터 2013년까지 13년 동안 교통부 집에서 살다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 왔다.
지금도 가끔씩 백산 옥련 선원을 찾아 부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하루에 1,000배씩 7일간 7,000배를 그렇게 했었다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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