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오래된 교통부 추억 본문
교통부(범곡교차로)는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동네이다.
내 나이 9살 초등학교 2학년 때 양복점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충주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와서
범냇골 로터리 근처에 양복점과 집이 있었고 그곳에서 부산진 초등학교에 다녔다.
그리고 교통부로 이사와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군대를 제대하고 27살때 까지
18년동안 살았던 곳이다.
그후 결혼을 하고 연산동, 수정동, 대연동, 그리고 용호동에서 살다가 교통부로 돌아왔다..
IMF외환위기로 집과 모든 것을 다 잃고 용호동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서 아무 곳에도 갈 수 없을때.
운명처럼 교통부로 18년만에 돌아왔다.
해운대 성심병원에서 퇴원을 하니, 입원하기전 마지막으로 야간 작업을 해주었던 병원 사업계획서를
받은 병원 이사장이 그 사업계획서로 국가에서 운영하던 큰 병원을 인수하게 되었다.
그 축하 모임에 참석을 했는데, 이사장은 고마움으로 나에게 교통부에 오래된 5층짜리 건물이 있는데
그 곳에 회사를 만들어서 무료로 사용하고 싶은 만큼 사용하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이사장에게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서 살 곳이 없으니 가정집으로 개조하여 살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미 세 들어있는 1층과 2층은 그냥 두고 3층은 사무실로, 4층은 딸들의 공부방과 피아노실,
5층은 안방과 주방, 거실과 작은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아내와 딸들은 학교를 마치면 교통부로 와서 청소하고 새 집 마련에 앞장을 섰다.
청소를 마치고 서면 까르프에 가서 해물탕 등 쇼핑하여 용호동으로 돌아가는 희망의 날들이 있었다.
작은 건설회사를 운영하던 친구와,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는 두 의형제, 토목 설계하던 의형제가
앞장서서 싱크대와 가구를 제작하고, 보일러 설치와 전기공사를 다시하고 모든 계단도 페인트칠을
다시하여서 건물을 거의 새 집처럼 만들어 버렸다.
새천년이 시작되는 밀레니엄 2,000년에 교통부로 이사를 왔다.
당시 기억되는 일은 KBS 대하 드라마 <왕건>에 심취하였고 2001년 9월 11일의 미국 무역센터 폭파사건이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다.
1999년 해운대 마린시티<썬플라자>오피스텔에서 작은 설계사무실을 운영하다가 남천동에 규모를 키워서
건축사 한 사람을 더 채용하고 직원들도 더 늘려서 회사 체계를 만들어 갔다.
2001년에 서면에 15층 오피스텔 설계를 하며 아내 법원 앞에 위치한 오피스텔로 이전하고
교통부 집에 스댄딩 에어컨도 설치하며 다시 재기의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나 또 뜻하지 않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낡고 오래된 건물이어서 오랫동안 임대나 매매가 되지 않았던 그 5층 건물이 새로 수리를 해 놓으니
매매를 할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었다.
나에게 이 건물을 사용하라고 했던 이사장이 해외 가 있을때 그 집안 사람들이 건물을 매매한 것이다.
건물을 새로 매입한 사람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3,4,5층을 다 비워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아직은 돈을 모아놓은 것도 없고, 이제 막 겨우 기반을 잡기 시작해서 다른 곳으로 집을 이사하기 힘든
난감한 상황이었다.
우리의 형편에 이사 갈 수 있는 곳을 여기 저기 알아보니, 좌천동 산복도로위 경사진 곳의
아담한 주택의 2층 집에 세를 들 수 있는 정도였다.
용호동에서 교통부로 이사 올 때, 줄이고 줄였던 가구와 집기도 거의 들어 갈 수도 없을 정도의 작은 집.
그것도 독채가 아니고 2층만 사용하는 것이었다.
인근에 주차를 할 수도 없는 그런 위치의 집. 가파른 급경사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집.
깊은 정망감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사를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999년<독백과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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