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수많은 별들이 뜨는 집 본문
해가 지자,
하늘로, 바다로 하나 둘씩 별들이 뜨는 것이다.
이윽고 수천, 수만 별이 반짝 빛나고 있었다.
좌천 산복도로에서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든 급경사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서
가뿐 숨 한번 내쉬고 다시 걸어 올라서
작은 2층 집 철문 앞에 섰다.
집주인인 나이 든 노부부의 안내를 받고
간단한 면접을 치러야 했다.
가족 구성과 반려견 여부, 나와 아내의 직업, 종교까지.
고등학교 다니는 딸 2명과 아내의 종교가 불교라는 것을 말하고
겨우 통과를 하였다.
좁고 가파른 외부 계단을 오르니
작은 베란다와 작은 2층 집에 나타났다.
장롱 하나 넣으면 아내와 꼭 붙어 자야 할 정도의 좁은 안방.
아이들 책상 하나 정도만 넣을 수 있는 작은 방,
오래된 싱크대와 작은 찬장.
그리고 좁은 마루,
안방에서 올라갈 수 있는 낮은 다락까지
우리 가족이 살기에는 턱없이 작은 집이었다.
장롱 하나와 책상 한 개 말고는 어떤 가구도 들어올 수 없는 집.
출퇴근할 때마다, 아이들 등하교할 때마다
산복도로 높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더 심각하게 느껴졌다.
단 하나 위안받는 것은 좁은 베란다에 서면,
부산 시내가, 바다와 항구가 막힘없이 전부 한 눈에 든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아내와 베란다에 서서 영도 섬과 도심을 바라보고 있는데,
해가 지자
하늘로, 바다로 하나 둘씩 별들이 뜨는 것이다.
이윽고 수천 수만 별이 반짝 빛나고 있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계약금을 걸고 돌아 나오는데,
교통부 건물을 새로 매입한 건축주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와서 만나니
... 오늘 매매한 건물 잔금을 치르러 갔는데,
교통부 5층 건물에 살아라고 했던 병원 이사장이 외국 갔다가 돌아와서 잔금을 줄여주는 대신
우리를 그냥 그대로 살게 해 달라고 하여서 주택으로 꾸며놓은 5층에서 계속 살아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수많은 별이 뜨는 산복도로 2층 집이 아닌 교통부 5층 살던 집에서
2001년부터 2013년 11월,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 올 때까지 더 13년을 살았다.
나는 옥련선원 대웅전 부처님 앞에서 매일 밤 1,000배씩 7일간 7,000배를 하며 간절히 기도 했기에
그 간절한 소망으로 교통부 집에서 계속 살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 또한 기적같은 일, 고마운 일이라고 지금도 그리 생각하고 있다.
......1999년 <독백과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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