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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룡사지 본문

천년고도 慶州

경주 황룡사지

SHADHA 2005. 6. 26. 18:02






경주 황룡사지
皇龍寺址






신라 최대의 절이자 호국의 대사찰로서
신라 불교문화의 정수가 모인
유서깊은 황룡사.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
월성 동쪽에 새로운 대궐을 짓다가
거기에서 황룡이 나타났다 하여
이를 절로 고쳐 황룡사라고 하고
17년만인 569년 완성했다.
이 때 솔거가 이 절의 벽에 노송을 그렸다.
명실공히 신라 제일의 국찰이었다.
584년에는 금당을 지었다.

後, 당나라로 유학갔던 자장율사가
태화지 옆을 지날 때에 神人이 나타나
<황룡사 호국룡은 나의 장자로 범왕의 명을 받아
그 절을 보호하고 있으니,
본국에 돌아가서 그 절에 구층탑을 이룩하면
이웃나라가 항복하여 구한이 와서 조공하고,
왕업이 길이 태평할 것이다.
또 탑을 세운 뒤 팔관회를 베풀고
죄인을 구하면 외적이 해치지 못할 것이다>라 했다.
자장은 귀국해 선덕여왕께 청하여,
구층탑을 짓게 되었다.
백제의 명공 아비지가 목재와 석재로써 건축하고,
자장은 부처사리 100과를 탑속에 봉안해
645년에 탑을 완성했다.
석탑을 건립하는 중에 백제 건축가 아비지가
기둥을 세우던 날 꿈에 백제가 망하는 현상을 보고
의심하여 일손을 멈추자 갑자기 땅이 진동하고
날이 어두워지더니 늙은 스님과 힘센 장사가
장육존상이 안치된 금당에서 나와
탑의 기둥을 세우고 사라졌다.
아비지는 이에 감동하여 탑을 완성하였다.

<삼국유사中에서>

선덕여왕이 이 탑을 세운 지 23년만에
신라는 3국을 통일하였고 후에
수많은 현철들이 신라삼국통일은
이 탑의 영험이라 역사에 기록하고 있다.

1969년 7월 이곳 강당지를 발굴조사하여
금당, 강당, 탑지의 초석을 발굴했고,
1976년 3월부터 8년간의 발굴 작업에서
독특한 가람배치인 일탑 삼금당식으로 밝혀졌으며,
4만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기단을 비롯한 건물 하부구조는 확인되었으나
상부가구재의 정확히 고증되지 않아
전체적인 복원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기단부만 복원하였다.

발굴된 터에서 나타난 사찰의 면적은 8,800평해 달해
불국사의 8배나 된다.
현재 사적 제 6호로 지정되어 있다.







넓은 들판에 섰다.
그리 먼발치에서 쳐다만 보아도 될 것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걸었다.

6월의 햇살을 조금도 가릴 곳도 없이
열려진 들판에 하늘과
기단부의 돌들과 풀밭만이 있다.

그 흔적들을 따라
옛 황룡사를 머리속에서 복원해가며
그 오랜 사찰속으로 들었다.

삼국 통일을 이루게 했다는 구층탑을 돌고
금당들을 돌았다.
문지방을 넘어설 때는 더 조심스레
발걸음을 높이고
외로이 선 나무 한그루를 지나온 바람결에
풍경소리 들리는 듯 하다.

세월이 하염없이 지나도록
이대로 들판으로 버려두지 말고
가능한 빨리 복원하여 구층탑의 그 氣를 받으면
어쩌면 통일되거나
지속적으로 간섭받는 외세를 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담으며 걷는 황룡사지.




































황룡사 복원 예상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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