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 旅行 2003
검게 타버린 꿈
사북 탄광촌에서
우리는
그것을 삶이라 불렀다.
다른 땅에서는
이미 여명이 다가와 밝아지기 시작할 때
아침이라 하였으나
이 깊은 산속에서는
아직 어둠속에 갇혀 있는데도 아침이라 했다.
그 아침에
침침한 백열등아래 아침을 준비하는 아내와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는 아이들을 내려다보다
더 깊은 어둠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기침소리에
검은 가래가 묻어나오고
까실한 입안으로 무우국에 말은 밥한공기 넘기고 나서
툇마루에 앉아 검은 고무장화를 신고
하얀 수건 머리에 동여맨 아내가 보자기에 싸서 넘겨주는
양철 도시락 받아들고 그 어두움속으로 다시 든다.
깊은 갱도를 따라 내려가
그 깊은 갱도속에 판자로 둘러놓은 작업 사무실에 모여
도시락 끌러 석탄 난로위에다 쌓아두고
노란 안전 띠장을 두른 작업반장에게 작업량을 배정 받을 때
어느 광부의 딸이 그려다 붙여 놓은
붉은색 배경의 기도하는 성모 마리아를 바라본다.
...오늘도 무사히...
그 어두운 땅속에서
검은 석탄속에서
삶이라는 이름을 가진 행위를 시작한다.
어느 때가 밤이며
어느 때가 낮이며
어느 때가 아침인지 알 수가 없다.
단지
요란한 타종소리에 밤인줄 안다.
갱도를 빠져 나와 세상밖으로 나와도 어둡다.
그 밤하늘에 별들만이 밝다.
그것이 우리의 희망이었다.
그 별속에 아내가 준비해 놓은 따스한 밥과 된장국.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연탄불로 따뜻하게 덥혀놓은 이불속 아랫목이 있다.
그것이 유일한 행복이다.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았으나
다른 날들을 기약할 수는 없다.
가슴안 두개의 숨통에 검은 죽음들이 날마다
늘어나서 그 꿈들을 태우기 때문이다.
오랜 이웃이었고 친구였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이 세상을 버려 남은 가족들마저 떠나버린
빈자리밖에 없는 집들을 말짱한 정신으로 지나가지 않으려고
뽀얀 불빛이 아련한 술집에 들어 막걸리 한사발로
목을 씻고,
막걸리 두사발로 가슴을 씻고
막걸리 세사발로 머리를 씻었다.
그런 다음에야 그 빈 집들 앞을 지나 아이들과 아내가 있는
집으로 들수 있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죽어서 떠나고
살아서 떠나고....
이제는 거의 다 떠나갔다.
떠나는 사람들도 아프고 슬프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 사연이 더 아프고 애닮다.
그 삶이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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