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함안>무엇도 남기지 않고 다하여 본문

가야의 땅(경남)

<함안>무엇도 남기지 않고 다하여

SHADHA 2004. 1. 24. 23:39


가을 여행
2003






무엇도 남기지 않고 다하여...

함안 무진정에서







없을 無  다할 盡

無盡


작년 늦은 가을

인연이 닿지 않으면 평생 쫓아도 만나 뵐 수 없다는

고승이신 설송 큰스님을

단 한번만에 태백산맥 깊은 산사에서 친견할 수 있었다.

세번 절을 하는 동안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읽으실 수 있으시다는

큰 스님을...


85세의 연세로도 청년보다 더 힘이 있고 맑은 눈과 음성을 가지신 그 분.

부드러운 웃음으로 나즈막히 물으셨다.

...내가 무엇을 도와줄까 ?

약 10 여분에 걸친 짧은 만남끝에 설송 큰스님께서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100일간 기도할 수 있겠느냐 ?

하시고는 나를 인도했던 적명스님께

...이 분께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챙겨 드려라...하셨다.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 나오려는데...

...바쁘지 않으면 공양하고 저녁 8시에 법회를 듣고 가...


저녁공양을 마치고 법당에 들어서니 70 여분이나 되는 스님들이

좌정하여 앉아있고 나는 그 맨 뒷줄에 앉았다.


중앙에 좌정하신 큰스님께서 좌중을 한번 둘러보시고는

가벼운 농담을 던지기도 하시다


...오늘은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관하여 공부를 하겠습니다...
 

....이시에 무진의 보살이 즉종좌기하사 편단우견하고

   합장향불하사 이작시언 하시되

   세존하 관세음보살은 이하인연으로 명 관세음이닛고

   불고 무진의보살 하사되

   선남자야 약유무량 백천만억 중생이 수재고뇌하되

   문시 관세음보살하면 관세음보살이 일시에 칭명하고

   관기음성하야 즉시에 개득 해탈케 하나니라...


   ....관세음보살 보문품중.....


...어떤 한 사업가가 자신의 일신은 돌보지 않고,

  가족들과 그 주변의 사람들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 하는데도

  일이 뜻한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이 사람을 도와 주겠습니까 ?...


큰 스님을 친견하는 것도 인연이 닿아야 가능하다 했는데

산사에 오르자마자 친견을 하게 되었고,

모든 것이 뜻한대로 잘 될 것이라며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읽으라 하셨는데..

그 법회에서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해석하여 공부하는 과정에서

나를 주제로 올려 놓으신 것 같았다.


큰 스님께서 하시는 한마디 한마디를 가슴에다 새기려는데

...인간이 살면서 지켜야 될 많은 것들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禮와 義입니다.

  여기서 禮는 무엇을 말합니까 ?

  스님들 대답해 보세요...


지금껏 큰스님과 스님들이 주고 받던 선답과 선문들은

형이하학적인 속세에 살던 사람으로서는 쉽게 답할 수 없는 것들이었는데

큰 스님의 그 질문에 답하는 스님들이 없자

큰 스님은 더 이상의 진행을 하지 않고 스님들만 둘러 보셨다.

순간 나를 보고 답하라 하시는 것 같은 전율을 느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여쭈었다.

...제가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여기서 禮란

원하는 것을 뜻한대로 다 이룬 사람은 스스로를 이루기 전보다

더욱 더 낮추고 있는 자에게나 없는 자에게나 남여노소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義란 무엇이냐 ?


...義란 모든 것을 다 이룬 사람은

  그렇게 이룬 재산과 기술과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그것을 받은 사람들이 또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나누어줌을 행하면 힘들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좋아져서 좋은 세상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의라 생각합니다.


고개를 끄덕이시던 큰스님께서 환한 미소를 지으시더니

...오늘 법회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태백산맥의 깊은 밤 가을 바람이 찹다.

차디차게 차워도 맑았다.







그렇게 인연이 된 설송 큰 스님.

85세 생신때도 찾아 뵙고,

양로원 기공식때도 찾아 뵙고,

100일 기도가 끝나던 겨울날.

하얀 눈이 온 태백산맥을 뒤덮은 날.

다시 친견하여 마주앉게 된 큰 스님

...이름을 무진이라고 해.

무진이 곧 관세음 보살이고 부처님이니라.


이름을 지어달라 원하지도 않았고 청하지도 않았는데,

불명중에 가장 높고 큰 이름을 주시었다.

무진의 보살은 부처님과 말씀을 직접 주고 받는 유일한 선남자.

부처님이 착한남자라 칭하시는 보살님이시다.


없을 無  다할 盡

無盡


그래서 그 무진이라는 이름이 나와 인연이 되었다.







그 해 여름

사람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흙으로 관세음보살상만을 빚어 만드는 아름다운 여인

회향을 우연히 만났다.

단아하면서도 깊은 눈길,

고우면서도 강해보이는 얼굴.

조각이나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그녀가 어느날 갑자기

흙으로 그 섬세한 관세음 보살상을 빚기 시작했다 한다.

그녀의 작업실을 겸한 전시장에서

향이 부드럽고 깊은 중국차를 함께 마시며 대화를 하던 중

그녀는 절대 팔지도 않고 주지도 않는 자신의 작품을 내게 주겠다 했다.

...마음에 드시는 관세음 보살상을 드릴께요...

...무진 관세음 보살상이 특히 마음에 듭니다.

갑자기 당황해 하던 그녀.

...무진 관세음상은 제가 가장 아끼고 저의 분신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허지만 꼭 원하시다면 드리겠습니다.

대신 그것은 바로 저니까 그렇게 생각하시고 아껴주십시요...


받아 나올 수가 없었다.

그것 또한 욕심이었다.

나의 욕심 하나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녀가 가장 아끼는

그녀 자신과 같다고 하는 작품을 가질 수가 없었다.


빈 손으로 그녀의 전시장을 나왔다.

그리고는 한 달쯤 지나서 그녀가 좋아하는 쿠키를 한통 사들고

그녀를 찾았다.

몇 시간 동안이나 그녀와 난 중국차를 마셨다.


...나의 욕심이었습니다.

무진 관세음상을 제게 주셨으니 저의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그대로 전시하여 주십시요.

많은 분들이 같이 볼 수있게 하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回香.

아름다운 그녀와 무진 관세음상.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무진.

나와 그런 인연을 가진 무진이란 이름을

현장 답사길에 우연히 만났다.

함안에서 고성으로 가는 길목.

자연스러우면서도 잘 가꾸어진 연못과 다리들..

한적하면서도 평화롭고 따스해 보이는 작은 언덕위

독특한 양식의 정자.

그 무진정에 올라 잠시나마 세상 사는 회한을 털 수 있었다.


그리움이 가득찬 가슴에 연못의 초록물이 들고

갈등과 번뇌로 가득찬 뇌속에 숲의 맑은 향이 들어

세상사를 잊는다.













'가야의 땅(경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밀양>밀양 영남루  (0) 2004.01.25
<김해>김해 산해정에서  (0) 2004.01.25
<함안>가을 편지  (0) 2004.01.24
<김해>血流를 따라  (0) 2004.01.24
<진해>연분홍 벚꽃이 봄의 시작을  (0) 2004.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