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샘
이제는 보이지 않는 수평선, 행방불명된 푸름.
08/03
이제는 보이지 않는 수평선, 행방불명된 푸름.
섬
-안도현
섬, 하면 가고 싶지만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 지워지지 않으려고 바다를 꽉 붙잡고는 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 힘 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 며칠, 하면서 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지 혼자서 훌쩍, 하면서
섬에 한 번 가 봐라 그곳에 파도 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 빛 아래 혼자 한 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 봐라
삶이란 게 뭔가 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 눈 밝혀야 하리.
어느 섬에나 가장 흔한 것은 바람과 파도와 돌, 그리고 일출과 일몰의 노을입니다. 게다가 그 섬은 먼바다이기에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海霧로 감 싸여 혼자서만 살짝 만나려고 숨겨둔 사람처럼 기다려주던 신비하고 호젓한 외딴 섬이었습니다.
그러나 밤새 뒤척이는 바람이 일깨운 것은 잃어버린 현실에 대한 각성, 갑자기 오는 한기, 문득 다가온 숨막히는 고요입니다. 성난 잿빛 파도로 이제는 보이지 않는 수평선, 행방불명된 푸름, 아아 <읽지 않음>이 주는 절망과 희망 사이에 혼자 외딴 섬이 되어 남았습니다.
오직 삶의 기쁨이 되고 힘이 되기로 약속하여 단 한 번도 상처를 주고받지 않은, 하여 밤처럼 심해어처럼 고요하고 부드럽게 잠복하여 걸어온 긴 시간이었습니다. 영혼의 자유까지도 굴복시키는 지상의 무게를 더 이상은 이기지 못해 압살 당해버린 단아하고 정갈하고 순연한 그대는 아직도 유리병 속의 증류수처럼 담백하고 투명한 보석입니다.
그대가 증발해버린 빈자리는 한 사람을 지우고 또 한 사람을 새기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피부가 되었답니다.
'00.8.30 표본실에서 푸른샘 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