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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푸른샘43 그대 아닌 누구와...Re:운문사 가는길 본문

깊고 푸른 샘

푸른샘43 그대 아닌 누구와...Re:운문사 가는길

SHADHA 2004. 2. 1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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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샘




그대 아닌 누구와...Re:운문사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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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닌 누구와 이 길을 다시 걸을 수 있단 말인가
그대 아닌 누구와 이 꽃을 다시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대 아닌 누구와 가을 비 우산 속을 함께 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나는 지나간 시간 속을 되걸어와 여기 서있습니다.
함께 걷다가 그대가 조금 비틀거렸던 자갈길을...
함초롬이 비에 젖은 상사화 꽃무더기를...
스님이 잠시 외출하신 요사채 앞마루를 찾아...

그 날 훔쳐보았던 요사채 빈방, 새하얀 당목 홋청의 베개 하나, 홋 이불...
황토벽 가까이 파르라니 둘러쳐진 모기장과 장작불의 훈향...
모두가 너무도 여전하여 당황스럽습니다.
그런데, 오직 그대는 안 보이고 정갈한 체취만이 내 주위를 감돕니다.

앞산이 홀연히 실비에 젖으며 안개에 감싸일 때도
실핏줄이 엉킬까봐 손가락 하나 닿지 못했습니다.
화염 속의 헝겊처럼 타 버릴까봐 눈빛 한번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우산 속 얼핏 스친 팔꿈치 온기에 입술조차 얼어붙는...

아, 그대 아닌 누구와 나눌 수 있는 회상입니까
그대 아닌 누구에게 고백할 수 있는 마음입니까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항상, 언제나, 역시...
나의 고통과 나의 행복을 그대는 전혀 모르는 척 하십니다.

             1998년 가을




추신: 아침에 등교하던 아들이 돌아서 만원 지폐 한 장을 주며 속삭였습니다.
아빠, 힘내! - 난생 처음 자식에 대한 책임이 무엇인지 꽝 소리나게 느꼈습니다.
만원어치 기름을 넣고 빗속을 달려와 헝클어진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아마, 제가 다시 일어서는 날쯤에나 이 빛 바랜 편지를 보낼 수 있겠지요.
무엇보다 그대의 기도가 필요하지만...  
지금은 못난 뒷모습을 보일 수가 없습니다.



**** 문득 만나는
:
:    외로움.
:
:
:    알고 싶어도 알수없는 꽃이름 있듯이,
:
:    알고 싶어도 알수없는 마음있으니,
:
:
:    우예,
:
:    알만해질듯 싶으면
:
:    그 마음속에 또 다른 마음 하나.
:
:
:
:    하나, 둘,셋,넷,
:
:    헤아리고 또 헤아려도
:
:    그 끝이 망연한
:
:    꽃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