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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푸른샘44 나의 작고 어린 밭 Re:소요유 본문

깊고 푸른 샘

푸른샘44 나의 작고 어린 밭 Re:소요유

SHADHA 2004. 2. 1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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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샘




나의 작고 어린 밭 Re:소요유

10/05



1005




비 내리는 어두운 오후, 나는 밭가에 서서 밭이 물먹는 소리를 들었다.
아직 어린 내 밭은 갓난아기처럼 젖을 빨 듯이 물을 먹었다.
행복한 듯 살그머니 실 웃음을 머금은 눈망울로 나를 치어다 보며...
이제는 내게 몸을 맡기고 고요히 누워있는 조그만 나의 밭.


이 지구 위의 작은 점 하나처럼 사소한, 그러나 나의 이름 아래 있는 밭.
우리가 처음 만난 십여 년 전 그것은 냄새나는 거친 흙덩이에 불과했다.
종이쪽 위에 손톱 만하게 그려진, 더구나 법적인 어려움에 쌓인 불쌍한 땅이었다.
오랜 무관심 속에 있던 그것이 지난 여름 갑자기 내게 찾아왔을 때야 나는 비로소,
진심으로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그것을 필요로 하고있는 나를 깨달았다.


나는 생전 처음 맨발로 흙을 밟았다. 엎드려 만졌다. 이를 잡듯 돌을 골라냈다.
흙덩이를 잘게 부셨다. 곱디곱게 분가루처럼 만들려고 애썼다. 갈고리로 잘 빗어주었다.
밭이 원하는 씨를 여기저기에서 구했다. 다행히 씨를 심은 날이면 하늘이 내리는 단비를
젖처럼 먹는 복 있는 땅이 되었다. 머잖아 파란 싹들로 옷 입은 예쁜 밭이 될 것이다.


어제 내린 비로 마늘들은 잔뿌리를 이 센티쯤 내리고 발꿈치로 버티듯 솟구쳐 있었다.
뱃속의 태아가 발길질하듯 힘껏 버티고 선 부풀은 씨들의 생명.
이른 새벽, 잠에서 깨이자 그 미명 속에 또 그것을 생각한다. 달려가 보고싶다.
밤새 잘 자고 잘 크고 많이 푸르러졌는지?


고랑과 둔덕이 점점 푸르러지듯이 나의 뇌수에 돋아난 생명도 푸르러질 것이다.
가슴의 메마른 샘도 어느덧 빗줄기 속에 넘친다.
나는 이제 다시 연두와 초록을 사랑한다.  밭이 키우는 모든 새싹들을 사랑하듯이
내가 마음 밭에 키우는 몇 가지 소박한 계획들을 넘치는 행복의 느낌으로 사랑한다.


        1997. 가을


:  
:       夫水之積也不厚
:
:       則負大舟也無力
:
:       覆杯水於拗堂之上
:
:       則芥爲之舟
:
:       置杯焉則膠
:
:       水淺而舟大也.      장자....소요유.
:
:
:       ...물이 괸곳이 깊지 않으면
:
:          큰배를 띄울만한 힘이 없다.
:
:          한잔의 물을 마루의 패인곳에 엎지르면
:
:          풀잎은 떠서 배가 되지만,
:
:          거기에 잔을 놓으면 마루 바닥에 닿고 만다.
:
:          물은 얕은데 배가 크기 때문이다.
:
:
:
: 새삼,
:
: 요즘에 많이 떠올리는 글입니다.
:
: 스스로 바다인줄 알았었는데..
:
: 그래서 반성하며,
:
: 작은샘이라도 쉬지않고 정성껏 파서
:
: 언젠가는 큰배도 띄울수있는 호수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
:
: 결코 서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