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샘
침묵 속에는 무엇인가가 가득히...
09/04
침묵 속에는 무엇인가가 가득히...
인어 공주처럼 몇 방울의 거품으로 사라지고 싶습니다. 빼앗긴 혀를 대신하여 춤출 수 있는 다리를 가졌지만,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은 차라리 아침 해 아래 녹아버리는 공기 방울이고 말겠습니다.
내 마음을 조준하여 무수한 닷트 구멍을 내고, 스미는 물처럼 삼투하여 어느새 내 여백을 가득 채워 버린 바다... 나는 그 물가에 눈먼 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그러니, 말 못하는 내 실존의 공터에 들어 서버린 목마른 환상은 그대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대... 말없음표의 주인이신 이여. 육지의 오류조차 외면하고 오직 맑은 섬처럼 사는, 그대 적막에 목이 메입니다.
내 말 못하는 고통도 결코 그대 탓이 아닙니다. 마법사에게 목소리를 내어준 인어공주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벼움... 손가락 하나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척박한 토질의 가슴은 안음도 따스함도 없이 오직 오랜 망설임과 서성임으로 회칠되었을 뿐. 그러기에 스스로 입다물 수밖에 없는 <거짓> 때문이지요.
날카로운 칼을 써볼 염도 못 내고 몇 방울 촛농을 옷깃에 남긴 채 떠나버린 인어공주처럼, 속됨을 벗은 사념은 빗줄기 따라 바다 속 깊이 사라집니다.
멀어질수록... 더욱 호젓하고 청아한 그대 모습이 아프게 기억됩니다.
'00.9.4 빗방울 전주곡을 들으며 빗속을 질주하고 돌아온 푸른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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