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샘
어느 정신과 의사의 처방 Re:이상과 현실
11/06
*Grace님,
현실과 이상에 대한 갈등, 누구나 언제나 겪는 일입니다. 좀 오래 전에 써둔 글 중에서 특히 젊은 여성이 결혼을 앞두고 느끼는 선택의 갈등에 대해 써 본 것입니다. 대략 발췌했지만 지금은 좀 부적절하기도 하고 좀 동떨어진 부분도 있군요. 그러나 그 안에 있는 처방은 지금도 내게 적용된답니다. 오랜만에 들리신 것 같군요. 좋은 여행기도 기대합니다.
<써니, 한 때는 나도 그렇게 불리워졌기에 반갑습니다. 나의 한때란 70년대 중반, 미국으로 취업이나 이민, 또는 소포결혼이 붐이었던 시절입니다. 소포결혼이 뭐냐구요? 미국에 사는 교포나 유학생의 사진만 보고 결정한 후 혼자서 LA공항이나 Kennedy공항에서 접속 후 바로 면사포를 쓰는, 어쩌면 이조 사대부적 결혼 풍속에 뿌리를 둔 것 같은 결혼방식입니다.
아뭇튼 그런 반열에 들지 못하는 친구들끼리도 영어식 호칭을 지어 가졌답니다. 지금은 전북대학교에 계시는 소교수님 조교시절에 지어주신 이름이 sunny- 지금도 그 이름을 기억합니다.
당시 주변의 친구들과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던 말 중에는 '결혼은 차선이다. 인생에 할 일은 학문과 예술이야. 그리고 남자는 적당히 대학만 나오면 된다, 경제력만 갖춰서 아내를 팍팍 밀어준다면...'이 우리의 유일한 오기였답니다. 요즘의 젊은 여성에게는 이보다 더한 자부심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정말 남편 두고 유학간 정말 강심장의 여인들- 지금 잘하고 있지요. 스트레스로 건강은 많이 상했지만 사회적으로는.
그리고 언제나 혼란스러웠던 현실이냐 이상이냐의 갈등이 우리를 괴롭혔지요. 딱히 결혼 않고 살기엔 우리는 힘이 없었고, 계산된 결혼을 하기엔 양심이 허락치 않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리고 어쩌다 정말 사랑이다고 생각했던 현실적으론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두고 정신과 의사는(나의 정신 질환 때문에 만난 것은 아니고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을 돕는 일로 였음)지금까지 나의 모든 결정에 결정적인 법칙을 가르켜 주었답니다.
"이상과 현실이 상충할 때는 먼저 현실을 택하라. 이상은 현실이 있는 곳 위에 언제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나는 그를 몹시 비웃고 욕했지요. 때묻은 사람이라 취급하고 말았답니다. 그러나 머지 않아 자명해지는 것은 그가 옳았다는 현실이었습니다.
나는요, 이제 알아요, 내게 별 재주가 없으면서 해마다 신춘문예 주위를 유심히 보고, 마음 속에 글 몇 줄 떠오르면 그렇게 즐거워하는 것이 나의 무엇인지. 나를 조성해오던 어떤 분위기와 칭찬과 우월감이, 그리고 한편은 이룰 수 없어 접어버린 꿈과 이상이 거기 있기 때문이라는 걸.
헤르만 헷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며 고통스러워하던 그 시절에서, 이제는 황동규의 시 '어떤 개인 날'의 한 귀절- 아무래도 나는 무엇엔가 얽매여 살 것 같으다- 가 공감되는 많은 시간이 흘러온 한 인간이 되었답니다.
지금 나의 다락방에는 여러 가지 빛깔의 추억이 많이 바래고 삭아서 어질러져 있습니다. 라빅과 칼바도스 한잔의 마음 설레임도, 편견과 오만을 빌려가고 주지 않은 사람의 기억도. 그래서 이따금 올라와 현실같지 않은 시간이 보고싶어집니다. 창 아래 바깥은 봄 소리처럼 어린애들의 재잘거림이 지나가고 햇살 속에는 연둣빛이 스며 있군요. 두서없이 쓴 글 용서하세요. 총총. >
: : : : 이상과 현실 사이에 서 있다. : : 누구나 그러하겠지. : : 이상만 있거나 현실만 있거나 : : 그럴순 없겠지. : : 이상만 있으면 세상이 바뀔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 : 어느날 : : 잠에서 깨듯 이상의 세계에서 깨어나보니 현실이 애처롭게 다가왔다. : : 받아들여야지. : : 나는 현실에 존재하니까. : : 현실 속에서 애틋하게 살고 있는 : : 나와 다르나 나와 같은 사람들과. : : : : - 안녕하세요. 회원님들. : 오랜만에 들어오니 처음 뵙는 분들도 계시네요. : 그동안 긴 여행을 했었습니다. : 푸른샘님처럼 사진이라도 함께 나눴어야 하는건데... : 돌아와 밀린 글들을 읽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 요즘은 아름다운 사진과 좋은 음악들이 함께 실려있더군요. : 참 좋습니다. : 서로가 가진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공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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