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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푸른샘137 불타는 금각사 본문

깊고 푸른 샘

푸른샘137 불타는 금각사

SHADHA 2004. 2. 1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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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금각사>

08/18







 

<불타는 금각사 >


몇 번의 환승을 하고서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지은 二條城(니조조)에 닿았다. 언젠가 가본 이가 그곳은 가야한다는 강추 때문이었지만 남의 나라 성에 꽤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긴 싫었다. 御殿의 규모는 넓은 마루를 걷고 수많은 방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다한다. 마루 한 장의 너비는 50센티쯤 되고 방들의 크기는 교실 한칸정도로 이십 평이나 될 것 같다. 외부인의 침입을 알기 위해서 마루쪽 위를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가녀린 새소리가 나게 했다나? 많은 방의 문(間)들에는 소나무나 학, 목단을 그려놓았고 천정의 덴조에 그린 연꽃무늬나 창호지를 붙인 창문의 직사각형 격자 무늬 등을 자랑한다. 내게는 상궁과 궁녀 그리고 무사의 밀납 모형이 그저 구경거리라 할까.


어디나 화재를 두려워하는 목조의 마루와 난간 그리고 기둥, 계단으로 된 성과 절, 누각들이다. 그래서 내부보다는 외부의 모양을 꾸미는데 치중했을까. 금색의 경첩 장식을 붙인 듯한 건물들의 외양이 무지갯빛 오색 단청의 우리 산사에 비하면 음울하고 답답하다. 그래서 주변의 잘 자란 소나무나 분재같은 수목들을 감상하는 편이 훨씬 상쾌하다. 정원에 깔린 하얀 모래는 아마도 어두운 실내를 향한 간접 조명의 역할을 하지 않나 생각되었다.


후원의 庭園을 보기 위해 돌아가니 역시 흰모래를 퍼다 깔아 논 마당과 소나무, 등나무 그리고 御手洗이라는 도쿠가와 쇼군의 전용화장실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일본에서 본 중 가장 후지고 초라하다. 휴게실에서 콜라 한 병을 1500원에 사서 마시고 만 원짜리 전화카드를 사서 집에 전화를 하는데 순식간에 절반이 없어진다. 돈 쓰기가 정말 무서운 곳이다. 이곳의 배롱나무 꽃송이는 유난히 크게 뭉쳐서 소담하게 핀다. 색깔도 진한 진달래색으로 아름답다. 가보고 싶은 곳으로 金閣寺(킨카쿠지)와 銀閣寺(긴카쿠지)를 남겨두었는데 나라역에서 해찰하는 통에 시간이 많이 갔다.


金閣寺는 꼭 한 번 가서 그 느끼하도록 진한 귀족주의적 무사 취향을 확인하고싶은 곳이었는데, 폐문 시간인 5시를 이십분 남겨둔 시각이라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이조성의 경비원이 알려준다. 멀리서라도 겉모습을 볼 수 없냐니까 숲과 물에 싸여 있어서 안보인다 한다. 이곳 성이나 누각들은 모두 넓은 수로(해자)를 허리에 둘러치고 있어서 외부의 침입을 방어한 것이다. 銀閣寺 역시 달빛을 감상하기 위한 모래더미라든지 연못과 정원, 그리고 그 유명한 철학자의 길이라는 산책로 등이 걸어 보고싶은 길이었는데...


다시 오사카로 돌아오는 국철을 두 시간 가까이 타고 보니 그 싱싱한 에어컨 바람에 몹시 춥고 지쳤다. 梅田(우메다)역에 내려서 한큐, 한신, 엑티브 백화점과 전자 상가가 있는 주변을 둘러보고자 그 모두를 연결하는 육교에 올랐다. 육교 위에서 보니 나그네의 피곤한 하루를 감싸주듯 서녘 하늘에 따스하게 분홍빛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육교 난간에 기대어보니 길거리 악사들이 연주 준비를 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드럼까지 낀 5인조 악단의 요란한 연주에 하루의 피로가 쓸려나가며 함께 몸을 흔드는 여유가 생긴다. 달랑 두 남녀가 벤조와 키타로 반주하며 애조 띈 노래하는 걸 물끄러미 구경하다.


한신 백화점 지하매장에서 야채 샐러드 팩과 과일(사과 1알, 블루베리 한 곽)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매운 맛이 그리워서 처음으로 집에서부터 가지고 간 햇반을 온수에 뎁혀서 고추장과 짱아치, 김과 라면 국물로 얼큰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맥주와 과일로 후식을 삼았다. 그런데 가슴속이 불난 것처럼 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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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호> 불타는 금각사(金閣寺)  2000년 04월 20일  
           
      -칼럼 <하늘, 바다, 비행기 그리고 여행> 중 옮김


일본 교토의 녹원사 경내에는 남색의 연못과 함께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고 있는 금박을 입힌 아름다운 목조건축물인 금각사가 있습니다.  이 금각은 1394년에 장군 출신의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건축하였고 1950년 방화로 소실되었었지요.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에...  누가  왜 불을 질렀을까.  과연 불태움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어린 시절에 불장난하던 기억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혼자서 혹은 친구들과 모여 앉아 성냥을 그으면 피시식하는 조그만 파열음과 함께 따뜻하게 피어오르던 주홍빛 불꽃...  그것은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에서는  어둠과 추위를 잠시나마 몰아내주는 안타까운 희망과 구원의 이미지로 나타났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는 또한 그 불꽃 속에서 따스하고 다정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불은 우리에게 이렇게 따뜻함의 이미지를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가스통 바슐라르는 그의 저서 '촛불의 미학'에서 그 위로 위로 타오르는 촛불의 상향성에서 고상한 것을 지향하는 인간 영혼의 이미지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불은...  인간에게 격렬한 파괴와 소멸의 이미지로도 작용합니다.

불이란...  그것은 화학적으로는 물질 속에 있던 탄소(Carbon)가 공기 중의 산소(Oxygen)와 격렬하게 반응하여 결합하면서 탄산가스가 되면서 에너지가 방출되는 현상 또는 그 에너지 자체를 지칭합니다.  그것은 물체의 원래의 형상을 파괴하고 회색의 재를 남깁니다.  그래서 불지름은 곧 파괴이며 소멸이었습니다.  과거부터 전쟁은 살인과 약탈과 그리고 거의 필수적으로 방화를 수반하였지요.  증거인멸의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바로 불태움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무언가의 흔적을 없애버리려고 할 때 흔히 우리는 그것을 불태워 버립니다.  진시황이 부하들에게 책들을 태워버리라고 명령하였을 때 그는 그 시대 그의 절대권력, 그 지배논리를 거스르는 지식의 소멸을 기도한 것이었지요.  앙드레 지드는 쓸데없는 부끄러움이나 가르치는 이 허망한 인류의 지식의 찌꺼기들을 증오하며 '나다나엘이여 언제 우리는 이 모든 책을 불태워 버리게 될 것인가' 하고 '지상의 양식'에서 외쳤습니다.

불은 생명과 사물의 파괴이면서 또한 그 이후의 창조와 생성의 기반을 제공합니다.  불사조(Phoenix)의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한용운님은 그의 시 '님의 침묵'에서  ' 타고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 누구의 밤을 지키는 작은 등불입니까' 하고 노래하였지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이 세상에서 불타고 난 잿더미는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 가깝기에,  결국 그 다음 단계는 생성뿐인 것이며 그래서 불태움은 소멸이면서 그 이후의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타버린 잿더미 위에 다시 새싹이 돋아나고 그 무성해진 연푸른 풀잎에 벌레들이 깃들이는 것이지요.

불은 또한 그 위로 솟구치는 화염의 격렬함으로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였습니다.  김동인의 소설 '광염소나타'는 악상을 얻기 위하여 불을 지르는 예술가를 그리고 있지요.  영화 '쿠오바디스' 에서 배우 피터 우스티노프가 분한 황제 네로는 로마를 불태우라고 명령하고 그것을 바라보며 시를 읊습니다.  페테로니우스는 나중에 그가 가장 참을 수 없던 것은 네로의 엉터리 시였다고 그를 조롱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영화는 결국은 소멸하며 낡은 것을 불태우지 않고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결코 창조하지 못한다는 절대권력자의 깊은 생각이 있었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지요.

주요한시인의 시 '불놀이'가 생각납니다.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 우에 스러져 가는 분홍 빛 놀....  오늘도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서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이라 파일날 거리를 물밀어 가는 사람들 소리...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주요한의 '불놀이' 일부)

그는 거리의 불놀이를 바라보며 '아아 좀더 뜨거운 정열에 살고 싶다'고 솟구치는 그 젊음의 고통을 그렇게 노래하였었지요.

대학 시절...  당시 서울문리대에 다녔던 친구가 젊은 나이로 죽어 벽제화장장에 간 적이 있습니다.  스물 둘의 꽃다운 나이였지요.  뜨거운 화구로 들어간 그의 젊던 몸은 하얀 뼛조각이 되어서... 그렇게 나오더군요.  흩어진 뼛조각과 하얀 재 사이에 한 두개 남아있던 조그만 불덩어리...

그때의 그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강은교시인의 '우리가 물이 되어'란 시의 한 구절에서 전율과 함께 다시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일부)  

벌써 숯이 된 뼈 한 조각이 오히려 이 세상의 모든 불타는 것, 소멸해 가는 것들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다는 이 놀라운 정서...  화장장에서 친구들의 점심을 챙기시던 그의 어머니의 모습에서 나는 그분이 이 시를 알지는 못했지만 이미 '만리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그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고...  그렇게 믿습니다.  불 지난 뒤에 우르르 우르르 물 흐르는 소리로 만나게 될 그의 아들의 모습을...

교토의 금각사...  이 금각은 20세기 일본의 가장 중요한 목조건축물의 하나이자 2차대전 이후 전쟁과 일본재무장을 금지한 일본헌법을 폐기할 것을 주장하며 1970년 공개 리에 할복자살한 미시마 유키오의 1956년도 소설 '금각사'로도 유명하지요.  이 소설은 젊은 승려인 주인공이 자신의 육체의 연약함과 불완전성에 대비되는 금각의 그 완벽한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에 절망하여 이 금각에 불을 지르는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미시마 유키오...  유미주의적 계열의 소설가...  그는 종전후 서구화되는 일본인과 물질적으로 번영하는 일본사회를 혐오하고 과거 일본의 국수주의와 군인정신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으며 이 두 가지의 상반된 가치들 사이에서 갈등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일상에서는 서구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서양의 문화에 대한 넓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일본이 이를 모방하는데 대해 분노하고 있었지요.  또한 그는 가라데와 검도로 육신을 단련하고 일본의 군인정신과 일본문화의 상징인 천황을 보호하기 위해 80여명의 학생들로 사병을 양성하기도 하는 등 특이한 개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단검으로 할복을 하고 그의 추종자들이 그의 목을 쳐주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수천 명의 군인들 앞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였는데 그것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계산된 것이어서 당시 일본사회에 충격을 던져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명성과 육신의 강건함이 절정에 있었을 때 결국은 영원하지 않을 자신의 육신을 극적인 방법으로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역사 속의 일본인들에게 물음표를 던지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관광객들은 그 금각사를 무심히 드나들고 있었지만 과연 그들은 그 소설을 알고 있기나 한 것일까...   아름다운 금각에 불을 지른 후 숨어서 눈물을 흘리면서 불안하고 초조하게 지켜보던 소설 '금각사'의 주인공과 화려하게 불타오르는 금각...  그리고 스스로의 육신을 극적으로 파괴하며 쓰러지는 미시마 유끼오의 모습들이 겹쳐져서 뇌리 속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유한한 육신을 불태우듯 파괴하면서 다시 새로운 탄생을 꿈꾸었던 것이지요.  그것은...  헛된 꿈이었을까요.

장려하게 불타오르는 금각사...  이 세상의 모든 화려한 것은 궁극적으로 불태워질 운명에 있는 것이어니...  그리고 불타서 소멸한 것은 또한 그 위에 새로운 생명이 깃들이는 법이어니...  그러니 모든 불타는 것들을 슬퍼하지 말지어다...

이 새로울 것도 없는 깨달음 속에 나는  강원도에서 며칠씩 지속되던 산불과 신문과 TV에 보도되는 그 잿빛 폐허와 황폐함 속에서  산촌 주민들의 절망과 아픔 속에서,   그 자연의 회복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여러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다시 무성하게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날 푸른 숲...  그리고 그 속에 깃들 아름다운 생명들의 모습을 봅니다.


2003.8.4 오후

푸른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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