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로 마음먹은 사람의 모습은 늘 정갈합니다. 자신의 뒷자리가 서운한 만큼 더 정갈함의 강도가 높더군요.
그렇듯 가을산도 정갈했습니다. 화려한 단풍의 모습은 사라지고 명암과 채도를 잃은 나무의 빛깔들은 그저 한해의 수고로운 역할을 다 한듯이
담백한 빛깔로 낮은소리로 웃고 있을 뿐 이였습니다.
발에 밟히는 마른낙엽의 사그락 거리는 소리는 벌써 온 몸을 단풍으로 불사르고 산화해버린 나무의 혼이 부르는 노래같았습니다.나의 발밑에서
리드미컬하게 마지막 가을의 전령이 그렇게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마른 나무 덤불 사이로 이름모를 작은새들이 열심히 깃털을 손질하는 모습과 그밑으로 여전히 가느다랗게 들리는 계곡의 물소리는 잠시 사고의
흐름을 늦추어 버리게 하더군요.
가지를 맥없이 놓아버린 낙엽들은 얕게 깔린 계곡의 맑은 물 속에 내려 앉아 노란물빛을 만들어 내고 물속의 작은 물고기들의 은신처가되어 한폭
수묵화의 부분이 떠오르게 합니다.
늦가을산은 그렇게 조용히 이미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자락 바람이 난데 없이 나뭇가지를 흔들자 산사 처마끝의 풍경은 요란히 울어댑니다.
마치 하루의 해가 저물고 있으니 어서 하산하라는 소리인듯...
아이들과 산책하듯 오른 늦가을 산은 어쩌면 떠나는 이의 뒷모습처럼 쓸쓸했지만 오히려 담담히 떠나는 지혜로운 모습을 담고
있었습니다. 무성한 잎들이 떠나간 자리는 오히려 드넓은 하늘이 차지하고 있었고 무성한 바람이 온산을 풍요롭게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가을산은 봄날의 연두빛 약속을 지키기위해 묵묵한 인고와 기도의 시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겠지요.
아이와 함께 채움을 위해 미련없이 버린 가을산을 등에 지고 돌아왔습니다.
**하얀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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