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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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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魚回鄕(부산)

비 오는 낙동강 뚝길에서

SHADHA 2006. 7. 6. 20:16

 

 



비 오는 낙동강 뚝길에서

구포에서 사상까지







1.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부산 지하철 제 3호선 설계를 할 무렵엔
내게 어떤 불행이 다가오고 있는지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구포의 낙동강역이
부산 지하철 1호선부터 시작된 15년간의 지하철 건축설계,
그 마지막 지하철 정차장 설계가 될 것이라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끝내 마무리도 하지 못한 채
대저 차량기지부터 김해평야를 지나고
낙동강을 건너 구포 낙동강역에 이르는
지하철 역사 설계를 다른 설계 회사에 넘겨주고
15년간의 열정을 접어야만 했었다.


2.

내 책상위에 놓여진 프린트기의 칼라잉크중
파란색 잉크가 늘 가장 먼저 떨어져 버린다.
내가 만드는 계획서에 푸른색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

요즘 하늘도 푸른색 잉크가 다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창 밖 하늘을 바라보다가 하게 되었다.
...요즘 하늘도 경제 사정이 어려운게다...
...어려우면 잉크리필이라도 하지...
허구헛날 회색빛 하늘만 보여주고 있다.

여름이 오자마자 장마부터 시작되어 비가 내린다.
창 밖을 한참 바라보다 그대로 뛰쳐나와
지하철 3호선을 타러 갔다.

나의 마지막 열정이 묻어있는 지하철 3호선
개통한지 한참이나 되었는데도
나는 단 한차례도 지하철 3호선을 타보지 않았다.
범죄자들도 자신이 범행을 저지른 현장을
꼭 다시 가 본다는데...

비오는 날 우산하나 달랑들고 3호선을 타고
낙동강과 만나는 구포 낙동강역으로 달려갔다.


3.

여러가지 회한과 감회속에
낙동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열려진 驛舍에 섰다.
철로가 낙동강을 어떻게 가로 지를 것인가를 놓고
회의를 거듭하던 날들이 어제일처럼 느껴졌다.
이대로 그냥 멈춰 설 수는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하고
내친 김에 구포 강뚝을 따라 하염없이 걷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 이리 우산을 받쳐들고 걸어보는 것도
오랫만이라는 생각에 계속 걸었다.

삭막한 뚝길이어도
이런 저런 꽃들이 여기 저기 피어있어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니 외롭지는 않다.
아름다운 꽃무리가 있으면 다가가 말도 걸어보고
뚝길의 주인인 들풀들과도 같이 노닐었다.

문득 길에 놓여진 달팽이 한마리 만나
쪼그려 앉아 가만히 바라보니
멈추어 서 있는 줄 알았던 달팽이
쉬지않고 길을 건넌다.
가지 않는 것 같아도 계속 쉬지 않고 간다.
나처럼 서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가고 있었다.
늦게 간다고 스스로 탓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래, 무엇이 그리 급해, 서둘지 말자.

비오는 초 여름날,
스산하고 삭막한 낙동강옆 뚝길을
결코 외롭지 않게 5 킬로미터를 그리 걸었다.
바람개비 도는 곳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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