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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부산시청사 뜰에서의 산책 본문

靑魚回鄕(부산)

부산시청사 뜰에서의 산책

SHADHA 2006. 7. 15. 01:56

 




부산시청사 뜰에서의 산책

살로메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회상







장마와 태풍
그리고 이어지는 장마.
그 틈새에 모처럼 푸른하늘이 나왔다.
오랜 파트너이며 후배 건축사인 C소장과 함께
업무차 나왔다가 회의를 마친 후
푸른하늘을 그냥 모른 채 하고 지나기 아쉬워
부산의 대표적인 건축물중의 하나인 시청사의 뜰을
천천히 산책하였다.
나이드신 분들의 휴식처와 놀이터가 된 뜰을 지나며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 하던 중,
문득 가슴끝에 나도 모르게 아려오는 추억이 떠올랐다.







1

2002년 햇살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봄날
새로 지어진 부산시청사 앞 뜰에
봄꽃보다 더 향기로운 여인이 나를 기다리고 서있다.
파스텔톤의 분홍빛 짧은 바바리코트에
긴머리를 바람결에 흩날리며 그리 서있다.
그 여인이 나의 살로메이다.

살로메....
그녀와 나의 인연은 우연처럼,
어쩌면 숙명처럼 시작되었다.
그녀는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비서였다.

30대 후반의 나는 야망에 젖어 스스로의 능력을 감지하지 못한 채
무작정 회사를 키워나갔고
건축설계회사외 두세개의 회사를 더 만들면서
건축가로서의 길보다는 사업가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조직이 커지면서 사장실업무만 전담하는 비서가 필요하게 되었고
신문광고를 보고 응모한 사람들중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해
최종적으로 두사람으로 압축되었다.
그 중 한사람이 살로메였다.
두사람 다 만족할만한 재능과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나
고민끝에 살로메가 아닌 다른 사람을 선택하였었다.
외모가 더 뛰어나고 화려한 살로메보다는 사무적인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사람으로....

그러나 비서로 채용된 그 여직원은 출근 며칠만에 그만두고 말았다.
폐소공포증이 있는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해
10층에 위치한 사무실까지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했다고 한다.
회사가 마음에 들어 계단으로 출퇴근을 하자고 나오기는 했지만
하루에도 몇차례 10층까지 오르내리는 일이 쉽지 않았던게다.

그래서 최종 면접에서 탈락되었던 살로메에게 연락하게 되어
나의 비서가 되는 인연이 시작되었다.







2.

살로메는 몇년간 나의 좋은 업무 파트너로서
내게 서슴없이 충언을 해주는 몇 안되는 참모이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IMF사태가 나라를 흔들 무렵
다른 모든 회사에서는 인원감축과 봉급삭감에 들어가기 시작했으나
나는 그러지를 못했다.
같이 고생해서 회사를 만들어 온 직원들을 내 보낼 수가 없었다.
모든 참모들이 인원감축을 건의 하였으나
그 아픔의 무게는 나의 어깨위에만 얹혀 있었다.
추석을 며칠 앞둔 어느날
나의 방문을 열고 들어선 살로메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저부터 짜르세요. 그래야 다른 직원들 감축도 가능하고
사장님과 회사가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나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녀는 사직을 결심했다.
그녀의 그런 고마운 마음에 무엇이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앞으로 무얼할껀데 ?
...저, 사진을 공부하고 싶어요.
...왜 ?
...사장님 외국 다녀오시면서 찍어오신 사진들 정리하면서
아름다운 사진들을 찍고 싶다는 충동을 많이 받았거든요.

나는 그런 그녀에게 전문가용 고급 카메라 세트를 선물하고
가까운 지인이였던 동백미술관 관장님께 소개해주었고
그녀는 전문사진작가의 스튜디오에서 사진공부를 하면서
다시 대학의 사진강의를 수강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사진이 나올 때마다 들고 와서는
경치좋은 달맞이 언덕위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토론을 하곤 했다.
그리고는 이내 각종 사진 콘테스트에서 입상을 하기 시작했다.







3.

그러나 그녀의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기를 각오하고 IMF와 싸웠으나 끝내 모든 것을 다 잃고 말았다.
그녀는 불교 청년 봉사회에 몸담고 봉사 활동에도 몰두하며
항상 부처님께 나를 위해 기도를 해주었고
4월 초파일때는 나의 이름이 적힌 등을 들고 밤새도록 돌았다 한다.

...사장님은 꼭 일어나실 수 있어요. 힘내세요...파이팅 !

그녀는 변함없는 마음으로 나에게 힘을 북돋아주었고
해운대 사무실로 다시 시작한 아주 가난하던 때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로 받은 첫봉급이라며 달려와서
기장의 한정식집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는
생선가시를 일일히 발라내어 고기를 나의 밥그릇에 올려주었다.

그 이후 나는 그녀에게 당분간 만나지 말자고 했다.
내 마음이 심하게 움직이는 것을 감지한 탓이다.

...내가 이제는 일어섰다고 판단할 때 네게 연락할께
너는 좋은 사진작가되고 나는 좋은 건축가되고
우리 그 때 멋지게 만나자...자기 일 열심히 하면서...

그리고 우리는 가끔 메일이나 전화로서 안부만 주고 받았다.

그리고 2002년 봄
나의 이름으로 된 오피스텔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
그녀에게 멋진 점심을 사기위해 시청앞에서 만났고
그 이후 2년간 우리는 예전의 사장과 비서의 관계가 아닌
좋은 친구로서 지극히 행복한 시간을 공유하게 되었다.
짧은 기간이였지만 우리 두사람에게는
평생 남을 수 있는 추억과 기억, 그리고 우정을 공유했다.







4.

루 살로메
니이체의 영원한 연인이였으나
단 한차례도 니이체와 육체적인 관계를 갖지않고
사랑한 여인으로 니이체로 하여금
철학과 불후의 명작들을 쓸 수 있게 한 동기가 된 여인
다시 만난 우리는 니이체와 살로메가 되기로 했다.

...만약 우리가 육체적인 관계를 갖게 된다면
저는 곧 사장님을 잃게 될거예요...
제가 사장님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되고 욕심도 생기고
또 헤여짐이라는 것도 당연히 따라 오게 되어 있고,
저는 사장님을 잃게 되는게 싫어요...
우리는 어차피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는 처지니까요...

그녀는 대단히 현명했고 나는 그녀의 뜻을 따랐다.
우리는 단 한치도 더 가까워 지거나 멀어지지 않고
영원히 수평으로 나란히 가는 두개의 선을 긋기로 했다.

그리고 2004년 2월
내게 등을 떠밀린 그녀는 34살이라는 적지않은 나이로
결혼을 하였고
우리는 영원한 친구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2006년 초 여름
나는 2002년에 그녀를 다시 만났던 부산시청사 앞 뜰에서
혼자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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