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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겨울속으로 걷는 여행 본문
겨울속으로 걷는 여행
청도 풍각의 시골풍경속으로
어두워진 하늘이 금새라도 가슴에다
하얀 눈을 내려 줄 것만 같은 겨울날이다.
하여 그 가슴에서 토해내지 못하고 쌓여만 가는,
그 누구에게도 쉬이 털어내어 말하지 못하는,
나의 아픈 언어들을 하얀 눈으로 덮어 녹여 줄 것 같은 날에
스스로에게도 미리 귀뜸하지도 않고 부산역으로 달려가
청도행 무궁화 열차를 탔다.
10년전 벼랑끝에 서서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을 때,
삶을 다시 이어갈 수 있게 손을 잡아주신 분께
가슴에 쌓인 아픈 언어들을 털어 놓으러 가는 길.
이 남쪽 항구도시에서 보다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눈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청도역에 내려서도 시외버스를 두번이나 갈아타야 갈 수 있는
조용하고 한적하며 깊고 깊은 시골마을.
청도역으로 차를 보내주시겠다는 호의를 마다하고
겨울속을 여행하는 가난한 나그네가 되어 그리로 가고 싶었다.
풍각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리며
어둡고 낡은 청도 시외버스터미널 대합실에는 시골노인들이
장꾸러미를 앞에 두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담소하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만난다.
풍각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렸을 때,
하늘에서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처음 만나는 눈이다.
목적지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다시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 시간 동안 풍각마을의 작은 강변을 거닐며
아직은 비에 가까운 싸락눈을 맞으며 겨울풍경을 즐긴다.
도시로 떠난 사람들이 비운 집들이 폐허가 되어가는 풍경곁을 지나고
청도보다 더 작고 소박하지만 시골의 운치가 묻어나는
풍각의 시외버스 터미널 대합실에 머물면서 사람사는 냄새를 맡는다.
개울가 느티나무들이 낭만적인 덕산마을의 입구 다리에서 내릴 때,
하얀 빛이 보이는 싸락눈이 머리위로, 얼굴로, 어깨위로 내린다.
천천히 개울가를 걸으며 그 풍경들을 즐기려 할 때,
저만치 마을입구까지 배웅나오신 분과 반가운 해후를 하고
공기맑고 조용한 마을의 따뜻한 온돌방에 들어
건내주신 뜨거운 유자차 한잔 마시며
가슴에 오랫동안 쌓아두었던 아픈 언어들을 토해놓기 시작했다.
싸락눈 내리는 날,
그렇게 가슴을 털었다.
겨울속을 여행하는 가난한 나그네로서의 행복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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