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외롭고 싶은 날에는 호포역에서 내린다. 본문
외롭고 싶은 날에는 호포역에서 내린다.
호포에서 물금까지 겨울여행 1
3월 4일, 아직 겨울이 떠나지 않아서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던 날,
부산 지하철 2호선, 부산의 북쪽 끝, 호포역에 내렸다.
요즘, 나이 탓인지, 내게 주어진 현실 탓인지, 외롭게 느껴지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특히 2월 구정 이후, 초긍정적 마인드로 삶을 영위하고, 스스로 행복 만들며 살려고 하는 내가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만나서 식사를 즐기고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하는 측근 지인에게 하소연을 하니,
그는 왜 필요 없이 초조해하느냐며,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이 노후에 살고 싶어 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느냐며,
가족들이 화목하게 살고, 이따금씩 일을 하면 돈도 생기고, 일이 없을 때는 여행을 하거나 산책을 하면서
사진도 찍고, 영화도 보고, 음악 듣고, 그림 그리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비싼 음식은 아니지만 먹고 싶은 음식도 사 먹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가고...
때가 되면 다시 사업을 재개 할 날이 오게 될 테니, 편한 마음으로 기다리라고 한다....
그런데 외롭고 우울하게 느끼는 가장 큰 원인은 아직 한참 일을 하여야 할 때인데
해야 될 일이 없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난 이후 2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
거의 매일 밤 10시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와서 새벽까지 공부하고 주말에도 거의 출근하고,
심지어는 바쁠 때는 명절 휴일에도 혼자 회사에 나와 일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남들이 평생 일을 할 시간만큼 열심히 일을 했으니, 나이 들면 나는 편하게 놀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그때, 생각했던 것처럼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많아도 너무 많이 논다.
노후자금 한푼 모아놓은 것 없이 다 털어먹고 가난한 채로 노후대책 없이 계속 노니 더욱 그러하다.
할 일이 없다.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한다.... 외롭게 만들고, 우울하게 만든다.
하루 종일 제도판에 엎드려 연필을 들고 건축계획을 하거나, 컴퓨터 앞에서 사업분석을 하거나, 계획서를 만들 때는,
그 작업의 댓가가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아도,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2월 이후에는 그마저도 할 일이 없으니 일상이 지루해지고 외로워졌다.
그렇다고 지금 예전처럼 건축설계회사를 만들어 사업을 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고,
건축사, 특급기술자, 그리고 건축관련자격증 3개가 더 있으니 어디든 취직이 가능할 것 같은데 그것도 쉽지 않다.
첫째는 나이때문에 한계가 있고, 완쾌되지 않은 건강때문에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함도 있다.
가까운 이들로 부터 건축설계사무실을 같이 운영하자는 제의를 종종 받지만 그래서 거절하고 있다.
딸들은 오랫동안 써 놓은 글들로 책을 출판하자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나의 능력이 부끄러워 내어 놓을 수가 없다.
해야 될 일이 없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외롭고 우울하게 만든다.
그런 날....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부산의 끝으로 가서 양산 호포마을로 들어서서 낙동강변을 따라 물금까지
차가운 바람부는 날, 외로움을 털려고 가는 산책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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