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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자의 독백

아주 오래된 대변항구의 추억 본문

靑魚回鄕(부산)

아주 오래된 대변항구의 추억

SHADHA 2021. 9. 27. 09:00

.. 행복했던 나날들을,
나는 기억한다.
저 싸늘하고 안개 짙던 파리처럼,
역사처럼, 무슨 일 앞에서도
우리가 스스로를 강하다고 느끼던 시절처럼,
희망과 사랑처럼,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환상처럼,
그 행복했던 나날들은 아득하기만 하다....

부산의 동해바다, 그 북단의 항구
기장의 대변항구에 거닐면서
나는 올리비에 롤랭의 <수단항구>를 떠올렸다.
서정적이면서도 건조하고,
건조하면서도 흡입력이 강하고
표면적으로 쓸쓸하게 파편화된 이미지들은
모두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잘 짜진 옷감처럼 치밀하게 직조되어 있는
그의 언어들이
아득한 동경을 불러 일으키는 아프리카 항구 풍경과
우리 마음속에 있는 여러 종류의 그리움
순수나 진리에 대한 그리움,
고향에 대한 그리움,
조금 더 본연적인 세상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들
우리의 일상 저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마치 무의식처럼 생각지도 않은 장소와
공간 속에서 빼꼼이 고개를 내밀게 했다.
이미 그리움의 촉수가
우리의 일상을 비집고 나오기 시작했다면
분명 그것은 또 하나의 혁명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반란이며 혁명임을
느끼게 했던 수단항구를 떠올렸다.

내가 대변항구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내 일생에서 햇살이 가장 눈부시고 아름답게 느껴졌던
1988년 늦여름이였다.
내 인생의 첫 목표였던 건축사 시험의 1차 시험을 통과하고
여름에 치루어진 2차 시험을 치르고 난 직후,
나는 이미 합격자 발표가 나기도 전에
합격했음을 감지하고 기쁨에 들 떠 있을 때였다.
건축사 시험 첫번째 응시에 바로 합격했다는 홀가분함이
자신감과 행복감, 그리고 미래에 대한 꿈을 더하게 했다.

은빛 햇살이 바다에 가득한 그 여름날,
해운대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비포장길을 달려와서
대변항구에서 밑바닥에다 얼음을 깔고 그 위에 멸치회를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한적한 해안에 앉아 줄낚시를 하던 대변항구.

그 이후
나는 대변항구를 경유하거나 머물거나 하면서
많은 사연들과 추억을 심어 놓았다.
그리고 19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항구를 바라다보며
올리비에 롤랭의 <수단항구>를 떠 올리는 것이다..... 2007년 1월에 씀

 그후 2012년 1월에 대변항구를 거닐었고, 2021년 9월에 아내와 월전항에서부터 걸어서 대변항 구로 와서 연화리 죽도
가는 길목까지 한바퀴 돌아서 전망대에 올라가서 대변항을 바라보며 오래된 추억을 되살려 떠올렸다.